[CEO&뉴스] '매출 1조 클럽' 우미건설···이광래 회장의 '뚝심경영'
[CEO&뉴스] '매출 1조 클럽' 우미건설···이광래 회장의 '뚝심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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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래 우미건설 명예회장. (사진= 우미건설)
이광래 우미건설 명예회장. (사진= 우미건설)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우미건설은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2011년 2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던 것과 비교해 다섯배 성장했다. 이광래 회장의 '뚝심있는 경영'이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다.

우미건설의 지난해 별도기준 매출액은 전년인 2017년보다 43.7% 증가한 1조243억원을 기록했다 . 우미건설은 2년 연속 최고 실적을 갱신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또 매출원가율이 다른 건설사들보다 10% 이상 낮은 80% 초반대에 불과하고 부채비율은 100%를 밑돈다. 양적·질적으로 모두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더욱이 이 회장은 지난달 개최된 '2019 건설의 날' 기념식에서 최고상인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00년도 이후부터 꾸준하게 전국 7만호 넘게 주택공급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회장의 수상은 굵직한 대형 건설사들을 제치고 얻은 수확으로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이 회장의 이력은 다소 독특하다. 40세에 소령 예비역 편입한 이 회장은 18년 간의 군복무  생활을 접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자부품사업과 양돈사업 등 다수의 시행착오를 겪었고, 최종적으로 주택사업에 발을 내딛었다.

그는 낮에는 예비군 중대장으로 일하고 저녁에 주택사업에 대한 공부를 이어갔다. 이후 1982년 지인들에게 투자를 받아 '삼진맨션'으로 주택사업에 첫 진출했으며, 1986년 우미건설의 전신인 '주식회사 우미'를 세우고 처음 아파트를 지었다. 당시 이 회장의 나이 54 세 때였다.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그는 사업 초기 설계를 배우기 위해 모든 견본주택을 다녔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직접 자금수급계획을 구상했으며, '3개년 자금수급계획서'도 창안했다. 계획서에는 일정, 전략, 자금, 완공 후 입주 전망 및 다른  아파트와의 비교분석 등이 포함됐다.

광주 서구 풍암지구에 1200가구 공공 임대아파트 공사를 시작했을 때는 외환위기가 도래하며 건설사들의 부도 및 도산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회장은 공사를 지속해 100% 분양에 성공했다. 아울러 이 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주택이 부족할 것으로 분석해 사업을 더욱 확장해 나갔으며, 목포 택지 1500가구 완판에 성공하는 등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 전국적인 건설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정도경영', '원칙경영'으로 대표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협력사에 대한 자금 결제를 미루지 않았고, 2005년 성실납세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총 5회의 성실납세 표창을 받았다. 또한 지난 2008년 경기 동탄신도시 '우미린 제일풍경채' 입주민들이 아파트 품질에 만족해 단지 내 이 회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념비를 세운 것 또한 우미건설의 큰  자랑거리다.

이 회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약속은 반드시 지켰으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연결된 사람 들이 고비마다 큰 도움을 주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우미건설은 계열사를 포함해 연매출 2조원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국 7만호가 넘는 주 택을 공급했고 새만금매립사업과 택지조성사업 등 국가 및 사회기반시설 공사에도 참여했다. 9600여세대의 임대아파트 공급 및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사업도 진행한 경험이 있다. 향후 우미건설이 얼만큼 성장할 수 있을지, 37년 뚝심있게 정도와 원칙을 외쳐온 이 회장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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