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사람
기업과 사람
  • 홍승희
  • 승인 2003.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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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초 뉴스를 타고 들려온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의 비보는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고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언론은 연일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과 장례 동향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그런 그도 이제 땅속에 묻히고 나니 뉴스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동안 정회장의 비보에 이은 조문객 면면을 전하는 언론들 가운데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끝내 조문하지 않은 사실을 화제거리로 다룬 곳이 있었다. 일각에서 정회장 죽음의 원인이 아닌가 의혹의 눈초리를 받던 특검 검사도, 검찰청 검사도 모두 조문행렬에 끼었는데 소위 현대그룹 1, 2차 왕자의 난의 핵심고리가 됐을 만큼 확실한 정몽헌 회장의 사람이라고 알려졌던 그가 정회장의 마지막 길을 외면해야 했던 엇갈린 운명은 분명 관심거리가 될 만했다.

되돌아보면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을 정쟁의 도구로 삼은 한나라당에 현대그룹의 대북관계 개입 정보들을 제공할 때 이미 두사람의 길은 다시 만날 수 없는 갈림길로 나뉘어 갔다. 대북사업에 그룹의 사활을 걸었던 정회장으로서는 완전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라면 IMF 직후 바이 코리아라는 시의적절한 구호를 내세우며 공격적 마케팅을 펼쳐 강한 인상을 남긴 뛰어난 CEO였다. 그러나 현대그룹 주도권 싸움에서 최초의 공격 타겟이 되면서 왕자의 난을 촉발시킨 빌미가 됐다.

정몽헌 회장은 그를 믿었고 그만큼 자기 사람인 그를 챙기느라 형제가 치열한 싸움을 벌이며 이미지에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적어도 이때까지 이익치는 정몽헌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현대그룹을 떠나 미국을 떠돌 수밖에 없게 된 이익치씨는 그후 철저하게 정몽헌에게 등을 돌렸고 그 결정적 행동이 당시 대북정책을 맹공하던 한나라당에 그룹 내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현대그룹의 대북사업 방식이 전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는 문제는 차치하고 자발적으로 적극 협력하던 정몽헌과 이익치의 신뢰관계는 그 일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여느 내부고발자들처럼 동정을 받기에는 그동안 이익치씨 스스로가 너무 적극적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는 점이 너무 크게 부각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입지를 위해 기업 내부 정보를 이용했다는 점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기는 어려운 처지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정몽헌 회장은 사람을 잘못 선택한 셈이다. 이런 정회장의 인사 오류는 많은 기업들이 수시로 범할 수 있고 또 흔히 범하는 오류다. 너무 사람의 똑똑함만을 중하게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등에 칼이 꽂힐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다. 기업 내부를 상처 투성이로 만들기도 십상이다.

현재 기업의 인사는 공개채용을 기본으로 한다. 대기업의 경우 공개채용이야말로 투명하고 열린 경영의 첫걸음이기에 바람직하다. 그러나 모든 좋은 제도에도 함정은 있게 마련이다.

공개채용의 기준이 소위 학력 중심, 성적 중심, 능력 중심으로 세워져 있어 인성 부분은 고려될 여지가 별로 없다. 물론 면접을 거치기는 하지만 여전히 똑똑한 사람이 우선된다. 실적, 능률만 강조하는 기업구조일수록 개개인의 인성은 무시되기 일쑤다.

어느 선까지는 그런 인사가 효과적이다. 그러나 소위 조직문화의 안정을 위해서는 위험한 카드가 되기 쉽다. 경영의 하향 고빗길에서 그런 인물들은 종종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물론 기업의 불법에 눈감는 소극적 동조를 권장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기업의 짐을 일정 정도 나눠질만한 인물과 재빨리 등돌리는 정도를 넘어 등에 칼을 꽂을 인물이 다를 것이고 기업이 이런 경우 누구를 의지해야 할지는 분명해 보이기에 하는 말이다.

지금 기업하는 이들은 너나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할지를 기업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선택의 고민은 형편이 어려울수록 더욱 깊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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