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지소미아' 파기, 得과 失
[홍승희 칼럼] '지소미아' 파기, 得과 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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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고심끝에 한일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의 종료를 결정했다. 사실상 협정 파기다. 국내 언론에서는 하루 전까지만 해도 지소미아 파기 문제를 한국 정부가 압박카드로만 쓸 것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일본 정부의 의사를 확인할 마지막 기회로 여겼던 베이징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처음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시켰던 때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일본 정부의 태도만 재차 확인하면서 더는 후퇴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정부간 관계가 이렇게 흘러가는 상황은 이번 한일경제전쟁이 새로운 한일 관계 정립을 위해 한번은 반드시 치르고 넘어갈 문제이며 지금 그 시기가 닥쳤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으로서는 한국 경제의 추격이 턱밑까지 닥친 데다 일본 경제가 현재 처한 상황이 자국내 정책만으로는 풀어가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급격히 늘어난 일본의 국가부채 문제는 이제까지 일본 정부가 장담해왔듯 해외 채무가 아닌 자국내 채무, 즉 일본 국민들에게 빚을 진 상태이니 부채가 늘어나도 별 문제없다는 단계를 넘어서 새로운 발전 동력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반면 한국은 경제전쟁으로 예상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술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고 부품, 소재, 장비의 지나친 대일 의존도로 인한 만성적인 무역적자로 인한 이번 사태와 같은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수도 있다. 또한 우리 경제력이 더 커지는 데 따른 일본의 지속적인 견제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기술 자립으로 나아가는 길에 더 큰 암초가 나타나 기술 종속의 늪으로 빠져들기 전에 이 관계를 전환시킬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다행히 국내 기업들 또한 일본 일변도의 소재 부품 장비 공급이 얼마나 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지 확실히 인식하게 됐다. 또 못해도 6개월 전부터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감지되기 시작했다는 일본의 공습 준비에 나름 대응전략을 세워온 것으로 보여 당초 예상보다는 위기를 발 빠르게 잘 대처해 나가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그러했듯 필자도 당초 대기업들이 어째서 리스크 관리를 그렇게 허술하게 했는지 안타까워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때의 판단이 성급했음을 인정하고 미리 대비해온 기업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하고 싶다. 일본의 공격 자체는 예상했더라도 방법까지 파악하기는 어려웠을 텐데 지금 대응하는 것을 보면 매우 효율적으로 잘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지소미아 종료 문제로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우리가 치를 비용도 결코 가볍지는 않겠지만 굳이 지소미아가 아니어도 미국의 압박을 크게 받았을 비용과 맞바꿨다면 한국으로서는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다. 국내에서야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정부의 대응에 대한 비판인지 비난인지가 쏟아지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분명 이제까지와는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은 광주민주화항쟁과 촛불혁명 등을 거치며 국내 정치적으로도 새로운 시선을 받게 됐다. 거기 더해 이번 한일경제전쟁을 통해 과거처럼 일본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만 가던 관계에서 벗어나 당당히 맞붙으며 오히려 일본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힘 있는 국가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게 됐다.

이는 단지 허세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 아니다. 한반도는 전 세계 무력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 강국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들 속에서 늘 선택 아닌 선택을 강요당해왔다.

최근 몇 년 사이에만 해도 미국의 강요에 의해 사드를 배치하게 되면서 중국의 지독한 경제보복을 당했고 일본의 이번 경제 공습이 있자마자 러시아 공군기가 한반도 영공을 침범하며 간보기를 했다. 따지고 보면 남북 화해, 나아가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사방이 적이지만 동시에 그 어느 나라와도 우호적으로 지내야 할 입장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따져보기도 전에 주눅 들어 행동했다. 나라가 약하니까 눈치봐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그래서 이번 일본 공습에도 작전을 가다듬기도 전에 일본에 먼저 다가가 화해하라는 국내의 압박이 컸다.

기성세대가 그렇게 주눅들고 눈치 보는 사이에 나라와 사회문제에는 관심도 없다고 어른들의 질타를 듣던 젊은 세대는 한일경제력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하며 우리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붙어도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다져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재발견한 우리는 해방돼서도 옛 상전 앞에서는 주눅 드는 노예근성에 젖어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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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재 2019-08-23 08:49:03
지소미아 파기로 인해 주위 태극기들과 언쟁을 해야 하는데 논리 있게 이길수 있는 힌트를 주셨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