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러시아 감산 반대에 사우디 '맞불'···'치킨게임' 신호탄?
[초점] 러시아 감산 반대에 사우디 '맞불'···'치킨게임'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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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셰일산업 '겨냥' vs 점유율 확대 '포석'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건물. (사진=김혜경 기자)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건물. (사진=김혜경 기자)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산유국 연합체의 감산 합의 불발,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례적인 조치가 맞물리면서 국제유가가 급락했다. 감산 합의가 불발되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산유량을 종전의 하루 약 970만 배럴에서 1000만 배럴로 늘리고 필요하다면 1200만 배럴까지도 확대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다른 산유국들까지 증산을 결정하며 산유국간 '치킨게임' 구도가 펼쳐질 경우 유가의 추가 하락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다.   

시장 예상 뒤집은 OPEC+ 협상

지난 5~6일(현지시간) 10개 주요 산유국(OPEC+)은 추가 감산안을 논의했지만 러시아 반대로 무산됐다. 이번 협상 결렬로 원유시장은 수요 둔화와 공급 증가라는 '이중고'에 맞닥뜨린 가운데 OPEC과 러시아의 관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주 감산 합의가 무산되자 유가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 전일 대비 배럴당 4.62달러 떨어진 41.2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14년 11월 이후 5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이다.

당초 OPEC+는 지난해 12월 회담에서 합의한 일평균 170만 배럴 감산안을 올해까지 연장하고, 6월 말까지 추가로 150만 배럴까지 줄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으면서 막판 합의에 실패했다. 

시장 전망은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심혜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협상 결렬은 예상된 것이었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지만 이는 타당하지 않고, 시장 컨센서스는 추가 감산과 감산 기간 연장 합의가 이뤄진다는 것"이라며 "협상 결렬 후 큰 폭의 유가 하락이 나타난 것이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감산 반대에 사우디 맞불 대응···속셈은?

러시아가 추가 감산을 반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심 연구원은 "정확한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저유가를 이용해 미국 셰일산업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며 "지난해 미국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르드스트림(Nordstream)2' 가스관 사업과 최근 베네수엘라와의 거래 지속을 이유로 러시아의 로스네프트트레이딩(Rosneft Trading)사를 제재했는데 이에 대한 보복 차원이 아니냐는 시각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러시아와 OPEC 회원국들의 시장 점유율 경쟁 악영향은 미국 셰일산업에 더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의 셰일오일은 WTI 기준 배럴당 55~65달러 수준이 유지돼야 안정적 투자와 증산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협상 결렬 후 사우디는 곧바로 러시아에 맞불을 놨다. 사우디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8일(현지시간) 아시아에 대한 4월 아랍경질유 선적분의 공식판매가격(OSP)을 벤치마크 가격인 두바이-오만유 현물시장 평균 가격보다 배럴당 3.10달러 낮게 책정했다. 또 4월 미국 거래처에 대한 아랍경질유의 OSP도 아거스고유황원유지수(ASCI)보다 배럴당 3.75달러 낮게 조정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람코는 OPEC+의 감산 합의가 종료되는 3월 이후 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아람코의 산유량은 하루 970만 배럴로 추정된다. 이달 중 긴급 회담 개최로 감산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산유국들은 4월부터 석유 생산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사우디의 이같은 전략은 저유가 국면에 대비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한편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산유국 치킨게임 신호탄?···"20弗대 하락 가능성도"

러시아의 감산 반대와 사우디의 움직임은 산유국 간 치킨게임이 본격 시작됐다는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점유율 경쟁으로 이어질 경우 WIT 기준 배럴당 20달러대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최악의 상황까지 제기되고 있다. 시장은 2015~2016년 상황이 재현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양국이 태도 변화를 보이거나 코로나가 진정되지 않는 한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으로 보고있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사우디가 본격 증산에 나설 경우 유가는 과거 최저 수준인 26.21달러를 경신할 가능성도 있다"며 "다만 수요 둔화 우려가 완화될 경우 2분기 내 소폭 반등도 예상됨에 따라 상반기 유가는 WTI 기준 배럴당 28~45달러 사이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유가 국면은 국내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만 장·단기 영향을 분리해서 봐야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연구원은 "재고평가손실과 가격 하락기에 발생하는 전반적 수요 위축이 국내 정유‧석유화학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원가경쟁력 상승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의 동반 하락이 2주 연속 나타났는데 현재 시황 악화가 수요 측면에서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제마진 악화와 유가 급락에 따른 재고 손실로 올해 1분기 정유사들의 실적은 부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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