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일본의 '갑질'과 반도체 소재 독립
[데스크 칼럼] 일본의 '갑질'과 반도체 소재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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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를 재개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22일 잠정 정지한 일본의 3개 품목 수출제한조치에 대해 산업부가 수출 규제와 백색 국가(수출 절차 우대국) 명단인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과 관련해 5월 말까지 입장을 밝히라고 일본에 통보했으나 끝내 가타부타 답변을 내놓지 않자 WTO 분쟁 해결 절차를 재개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배경은 단순 정치적인 요인만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초 만해도 일본은 반도체 강국으로 자리했었지만 불과 20여 년이 지난 지금, 반도체 제조는 포기했고 개발 및 소재사업에만 집중하고 있다. 핵심소재의 대부분이 일본에서 생산되고 있어 여전히 반도체 생산에서 무시 할수 없는 나라다. 특히 한국은 일본의 의존도가 높아 수출규제가 민감한 사안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지난해 7월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인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을 일반포괄허가 대상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꾸고, 수출 규제에 들어 감에따라 우리나라의 반도체 생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됐다.

이에 정부와 업계가 한마음으로 공급 다변화 등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섰고 일정 부분 성과도 거뒀다. 우선 90% 이상을 일본산에 의존하고 있는 EUV 포토레지스트를  비슷한 품질을 보유한 벨기에(RMQC), 미국(듀폰), 독일(머크) 등 일본 외 국가로 수입국을 다변화했다. 최근에는 듀폰이 EUV용 포토레지스트 개발·생산시설을 충남 천안에 구축했다. 국내기업인 동진쎄미켐과 SK머티리얼즈도 개발에 나섰다.

액체 불화수소는 국내 기업 제품을 중심으로 반도체 생산 과정에 투입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불산액 일부를 국산으로 바꿨고,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는 일본산 불산액 100%를 국내 기업 제품으로 대체했다.

솔브레인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고순도 액체 불화수소 대량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국내 기업에 불산액을 일부 납품하고 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경우 폴더블 디스플레이 소재인 투명 PI 필름에 사용되는데,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이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양산 능력을 갖췄으며, SKC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관련 대규모 공장을 구축하고, 시험가동 중이다.

반도체 소재산업이 다변화가 진행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기존 제품을 원활히 공급받고 있다는 사실, 즉 현실 안주에 있었을 것이다. 일본이 석연찮은 이유로 갑질을 할 줄은 미쳐 예상치 못했을 테니까. 현실 안주의 배경으로는 신제품을 테스트하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기존 제품보다 성능(질)이 좋지 않을 경우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등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반대로 리스크가 큰 만큼 기술 독립에 성공하면 누리게 될 잇점 또한 당연히 그에 못지 않다. 납기 단축 및 업체의 다양한 규격에 맞는 제품을 공급 받을 수 있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발빠른 대응으로 이 문제를 어렵사리 해결해 가고 있다. 수입 다변화뿐 아니라 국산화에 성공해 양산에 적용된 사례들도 적지않다. 위기가 기회로 바뀌고 있는 지금이 반도체 소재의 탈일본화를 위한 최적의 시점이다. 

언제까지 반도체 소재를 일본에 의존할 수는 없다. 정부가 지원을 약속하고 기업이 협업하는 현 상황이 한국이 반도체뿐 아니라 소재산업에서도 앞서 갈 수 있는 적기다. 또, 그래야만 한국이 명실상부한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다. 어떻게 쌓아올린 금자탑인가. 그 누구에게도 더이상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노진우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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