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중기 정책 위한 제안 하나
[홍승희 칼럼] 중기 정책 위한 제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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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지방도시의 중소기업인을 만났다. 기존 사업을 죄다 정리하고 신규사업을 시작하면서 해당 도시의 산업단지에 입주를 하려는 데 지자체나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 관련부처의 승인을 모두 받았지만 산업단지의 지역 실무책임자가 계속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몇 달째 제자리걸음이라고 했다. 이미 전국을 돌아다니며 거래처도 다 확보한 상태에서 공장 건설이 미뤄지면서 적잖은 비용손실을 겪고 있다고 했다.

해당 책임자가 결정을 망설이는 이유는 새로운 사업분야여서 성패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며 한숨을 쉰다. 정확히 그린뉴딜정책의 핵심사업분야까지는 아니라도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그린사업의 범주에 드는 일이며 국내와 달리 이미 선진국에서는 제법 각광받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실무자들은 행여라도 나중에 책임질 일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지역에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릴 기회로 여겨 지자체에서도 호감을 갖고 있지만 실무책임자들이 몸을 사리니 실제 산업단지 입주업체가 당초 기대만큼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들으며 순간 황량했던 개성공단 신규부지가 떠올랐다.

개성공단이 폐쇄될 무렵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남북관계의 경색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2차, 3차 입주를 기대하며 1차에 비해 월등히 넓은 개성공단 부지를 의욕적으로 준비했던 북한이 지지부진한 남한기업의 입주상태에 불만이 커졌던 사실이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남한 기업들이 개성공단 입주를 망설인 까닭이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에 있었으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부질없는 책임공방일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지역사회에서는 산업단지가 조성되면 당장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단지 조성만 된 채 놀고 있는 땅들이 적지 않다고 알고 있다. 앞서 사례와 같은 이유가 활성화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볼 일이 아닌가 싶다.

이런 문제가 아니어도 중소기업 위주의 지역경제는 중소기업들 자체가 안고 있는 한계들로 인해 여간해서는 활성화되기 어렵다고들 말한다. 우선 인력수급 등의 이유로 서울 등 대도시에 집중된 첨단 벤처기업을 제외한 대개의 중소기업들은 낡은 경영방식과 낮은 수익성 등으로 인해 부채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기 십상이다.

정부가 지역 중소기업 지원 금융을 확대하고자 해도 조성된 자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미 늘어난 부채로 인해 신용등급이 낮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의 정책자금을 받으려면 최소 3등급 안에는 들어야 하는 데 지방에서 여러 해 사업을 운영한 중소기업들의 경우 잘 해야 4, 5등급 수준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지원대상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어떤 정책 목표를 세우든 금융기관들로서는 부채비율이 높은 이들 기업에 대출해주기를 꺼리는 데 우습게도 그 금융기관들이 이들 자금이 급한 중소기업을 상대로 고금리 대출은 잘 해준다는 점이다.

2% 수준의 정책금융이 풀려도 이들 중소기업은 5%, 심지어는 10%의 실질금리를 부담하며 대출을 받고 그마저도 다행이라 여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한탄이 나온다. 그러다보니 기껏 돈 벌어 금융기관 이자 갚는 데만 허덕이게 되고 운영자금을 또다시 추가대출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든 한계기업들이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물론 사업성이 떨어지는 기업들은 정리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지방도시에서 사업을 하는 경우 완전히 구석으로 내몰리지 않는 한 작은 도시에서 서로 이리저리 얽인 관계 때문에 웬만하면 기업을 문 닫지 못하는 정서가 있다고들 한다.

어찌 보면 불합리할 수도 있는 이런 ‘관계’들이 지역사회에서는 또 하나의 신용이기도 할 텐데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그런 지역사회만의 신용을 읽을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은 아닐까 싶다. 지방 중소기업들의 경영상담까지 같이 해줄 수 있는 지역금융의 쇠퇴가 지역경제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일지도 모르겠다.

대기업과 달리 경영상담을 받아보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에게 대출 못지않게 절실한 것은 어쩌면 개별기업의 사업성 평가를 포함한 경영진단일 것이라는 한 중소기업 사장의 얘기 속에 금융산업의 새로운 서비스 분야가 펼쳐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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