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모 은행 직원 SNS 글 일파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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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직장인 사내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올라온 NH농협은행 직원의 글이 엠엘비파크, 네이트판 등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로 옮겨지며 확산되고 있다. 네이트판에서 2일 9시 기준 조회 수가 29만7790회에 이르고 댓글은 992개가 달릴 정도로 반응이 뜨거운 이 게시물의 제목은 '자기 마음대로 남의 인생 망치는 농협 직원'이다.

내용은 이렇다. 농협은행 한 직원이 대출상담 고객 때문에 식사 도중 영업지점으로 복귀하게 됐다. 부동산 분양 잔금대출 납입 일을 일주일 남기고 온 고객이 영업점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양치질을 하고 오겠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빨리 빨리 다녀라. 고객을 기다리게 한다'는 날카로운 핀잔만 돌아왔다. 고객에게 신용조회, 구비서류 안내 등 절차를 마치고 이틀 뒤 서류를 받은 이 직원은 '심사해보겠다'고 했다. 그러고서는 잔금일 하루 전에 대출 거절을 통보했다. 고객에 대한 언짢은 심기는 이렇게 표현했다. '엿 먹어라 이년아. 니 무덤 니가 팠다'

'은행 시스템상 승인이 났을 텐데 대출 거절을 어떻게 했냐'고 다른 은행 직원이 묻자 이 직원은 '고금리업권 대출 보유 중이고 총부채상환비율(DTI)가 초과돼서 안된다'며 '고객은 못 알아들을 소리를 해서 대출을 거절했다'고 답했다. '시스템 승인이 났다고 다 대출해줘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면서 난 내가 해주기 싫으면 안 해준단다. 같은 농협은행에 근무하는 직원이 한 마디 거들었다. '나도 신용대출 취급할 땐 관상 보라는 얘길 선배들한테 들었다'고.

네티즌들은 이 사건을 갑(甲)인 은행의 횡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겠다'부터 '농협은행 못 믿겠다. 이 직원 색출해야 하는 것 아니냐' 등 비판 일색이다. 격한 반응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살기가 영 팍팍해진 상황에서 은행원의 주관적인 평가, 감정 상태에 따라 대출을 거절 당한 고객이 내가 될 수 있다는 공포심도 반영됐을 것이다. 신용도나 서류 등 정량적 문제가 아닌 은행원 기분을 거슬리게 하는 것도 대출 거절 사유가 될 수 있다니.

농협은행 측은 "젊은 직원의 치기어린 허세" 정도로 설명했다. 익명성이 보장된 블라인드 앱 특성상 직원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데다, 실제 지점 내에서 책임자들에게 대출 거절 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재량만으로 절대 대출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했다. 농협은행 직원의 게시물은 블라인드 앱에서 이미 지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저 글을 쓴 직원은 익명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아무런 처벌도, 인사조치도 받지 않게 됐다. 농협은행은 "아니다"고 부정했지만 이제 다음 피해자가 누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 기회에 관상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야 하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직원들로 인해 은행 전체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훼손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객들이 은행을 선택하는데 있어 신뢰는 빠질 수 없는 요인이다. 농협은행이 이번 일을 해프닝으로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고객들은 단순히 저 직원만 불합리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기억하지 않는다. 농협은행, 나아가서 전체 은행에서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은행에서 돈을 공짜로 빌리는 것도 아닌데 왜 고객이 대출 창구 앞에서 떨어야 할까. 하긴 '금융은 신뢰로 먹고 산다'는 말을 못 본지 한참 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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