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남에게만 날카로운 금감원의 '라임 칼날'
[기자수첩] 남에게만 날카로운 금감원의 '라임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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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남궁영진 기자] "판매사로서 어느 정도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졌는데도 CEO(최고 경영자)까지 강력한 철퇴를 가하는 건 너무한 처사 아닙니까. 아닌 말로 내부 직원 연루 혐의도 드러난 금융감독원이 책임론을 희석하려는 술수죠."

단군 이래 최대 금융사기로 일컬어지는 '라임 펀드 사태'와 관련, 판매 증권사의 징계 수위를 논하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가 두 번 이뤄졌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심의가 길어질수록 제재 주체인 금감원을 질타하는 업계 목소리가 높아지는 형국이다. 

금감원은 앞서 KB증권·신한금융투자·대신증권 등에 '직무정지'를 염두에 둔 징계안을 사전 통보했다. 연임 및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되기에, 사실상 '짐 싸라'는 의미다. 3개 증권사 중 유일하게 현직인 박정림 KB증권 사장은 가장 난감한 처지가 됐다. 

그간 제재심에서 결정된 전체 안건 중 96%가 금융위원회에서 원안대로 확정됐던 선례를 보면 이 같은 징계안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해당 증권사는 물론 업계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다. 타 증권사 CEO 30여 명은 '징계가 과도하다'는 뜻을 모아 국회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저마다 '징계 수위 완화'를 적극 설파하고 있는 증권사들은 제재 주체인 금감원의 책임론에 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금감원 내부 직원이 라임 검사계획 문건을 김 모 전 금감원 팀장(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그대로 넘긴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내부통제 부실'을 문제 삼아 라임 펀드 판매사 CEO를 중징계하겠다는 금감원이 정작 사태에 연루된 전·현직 직원들의 비위를 막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금감원은 문건을 넘긴 직원에게 3개월 감봉이라는 경징계를 내리면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오명까지 등장했다.

라임 외에도 대규모 환매 중단을 야기한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가 잇따르면서 금감원의 책임론이 더욱 도마 위에 오른다. 주요 임무인 감독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놓고 판매사 제재에만 열을 올려, 본인들의 잘못을 떠넘기려 한다는 노골적 비판도 나온다.

제재 대상인 KB증권은 "금감원의 감독강화 실패가 사모펀드의 부실화를 초래했다. 제재의 타당성·형평성을 재고해 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최근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선 한 개 증권사의 탄원이 모두의 '공통분모'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향후 비슷한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판매사에 대한 높은 제재가 마땅하다는 의견도 적잖다. 하지만 내부통제 실패로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에 일조하고, 판매사에만 일방적 잣대를 들이댄다는 세간의 비판을 금감원은 새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직원의 일탈이 생기는 것 자체부터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지난 달 국정감사에서 윤석헌 금감원장이 한 일침이다. 금감원이 '내부통제 미비'를 근거로 판매사에 휘두른 '라임 칼날'은 자신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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