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광기의 가상화폐 시장, 책임감이 필요한 때
[기자수첩] 광기의 가상화폐 시장, 책임감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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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그림을 사고파는 것도 양도 차익은 세금을 낸다. 그림을 사고파는 것까지 정부가 보호하느냐."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가 투자자 보호는 등한시한 채 암호화폐(가상화폐) 과세에만 나서고 있다'는 지적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내놓은 답변이다. 사고팔 때 생기는 차익에 대해 세금을 내는 그림의 경우, 가격이 떨어진다고 해서 정부가 책임지지 않듯이 가상화폐 역시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은 위원장은 가상화폐 거래를 왜 그림에 비유했을까. 사실 정부가 바라보는 가상화폐와 그림은 닮은 점이 많다. 자산이긴 하지만 투기성이 짙고 가치를 매기기도 어렵다는 점에서다. 거래 시 발생하는 소득은 일시적이거나 불규칙하다.

소득세법에서 가상화폐가 미술품과 함께 '기타소득' 범주에 속해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술품은 물론이고, 도박 등 사행 행위로 번 돈 등 주로 가치를 매기기 어려울 경우 기타소득으로 분류하는데, 가상화폐 역시 같은 선상에 놓였다.

아직 자산으로서 지위가 불명확한 만큼 양도소득 혹은 금융투자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서의 세금을 걷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이처럼 과세에 당위성을 부여하면서도 가상화폐를 '인정할 수 없는 가상자산'으로 못 박은 은 위원장의 발언 직후, 시장에선 거센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세금을 걷는 행위가 모순적이라는 비판을 쏟아낸다.

특히 당장 내년부터 과세가 예정돼 있는 가운데, 정작 시장 관리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당국의 태도를 지적하는 이들이 적잖다. "화폐의 흐름이 변하는데 당국의 인식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은 안 하면서 대책 없이 시장만 때려잡겠다는 것 아니냐" 등이 주된 볼멘소리다.

그간 가상화폐 시장에서의 정부의 대응책을 생각해보면 이들의 반발은 일면 수긍이 된다. 3년 전과 비교해 거래 시장이 급격히 커졌지만 정부는 여전히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형국이다.

가상화폐의 실체나 가치를 인정하지 않다 보니 대응책도 원론적 수준에 그친다. 오는 6월까지 진행하는 자금 세탁·사기·불법 행위에 대한 특별단속은 투자자 피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가상화폐 관련 법은 가상자산거래소를 대상으로 하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유일하다.

당국의 말처럼 가상화폐가 '내재가치가 없는 화폐'라면 하루에만 수십조원이 오가는 도박장과 같은 거래소를 규제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특금법에서 규정하는 거래소 검증은 은행 몫이다. 

거래소가 돌연 폐업할 경우 투자자가 보호받을 장치는커녕 기본적인 공시 규정 역시 전혀 없다. 당국이 투자자 보호와 관련해 할 수 있는 것은 "투자에 유의해 달라"는 경고뿐인 셈이다. 곳곳에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까닭이기도 하다.

물론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였다가는 투기 열풍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정부의 우려에 깊이 공감한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광풍을 옹호할 생각도 전혀 없다. 하이리턴을 위해 하이리스크를 감내해야 하는 것은 가상화폐에 뛰어드는 이들의 몫이다.

다만 그렇다고 이 광기의 시장을 정부가 그냥 둬서도 안 될 일이다. 가상화폐 광풍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게 뻔히 예견되는 상황에서 혹시나 있을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정부가 조치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규제에 앞서 가상화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가상화폐의 법적·지위적 정의가 불명확한 상황에선 혼란과 함께 3년 전과 같은 아마추어 플레이가 반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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