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일본의 입이 된 한국의 언론
[홍승희 칼럼] 일본의 입이 된 한국의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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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기자시절 아직도 기억에 남은 한 선배 데스크가 의욕 넘치는 신참을 보며 한 표현이 있다. "저 친구가 열심히 뛰긴 하는 데 어디로 뛰는 지를 본인도 몰라"라고.

이 말을 요즘 젊은 기자들을 보며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이삭줍기에 몰두하다보니 본인이 줍고 있는 벼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르거나 혹은 알고 싶지도 않은 건 아닌가 싶은 사례들을 종종 보게 되기 때문이다.

사건의 본질과 흐름은 무시하고 사소한 팩트에 집착하다보면 흑과 백이 뒤집히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 경우 범죄자를 뒤쫓던 시민이 범인을 붙잡아 제압하는 과정에서 다소의 폭력이 수반됐을 때 범죄자의 잘못은 묻어두고 시민의 폭행만 문제 삼는 본말전도의 상황을 초래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기자들은 흔히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언론의 본령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역사적 맥락을 소홀히 하기 쉽다. 그러다보면 본의가 어떠하든 역사적 흐름을, 혹은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어리석을지언정 타락한 것이 아니니 경험이 쌓이다보면 개선될 여지가 있다. 문제는 특정 목적에 매몰돼 고의적 왜곡을 한 정보를 모르는 척 수용하는 경우다.

국경없는 의사회에 이어 국경없는 기자회도 존재하는 것을 보면 결국 기자들에게 국가라는 틀이 제약이 될 수밖에 없음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싶다. 기사를 쓸 때는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우리나라’라는 식의 표기를 지양하지만 실상 기자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세상을 볼 수밖에 없고 기사에도 그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각 국가의 정치적 규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국가에서는 제약이 존재한다. 물론 상업적 이유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 어쩌면 현대사회에서는 그 이유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영향에 매우 취약한 나라의 하나가 일본이 아니라고 말하긴 어렵다. 일본인들 스스로는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민주주의 국가가 됐고 또 세계 3위의 선진국이라고 자부하지만 일본의 언론자유지수는 터무니없이 낮다는 게 국제적 평가다.

언론자유지수라는 게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을 여러 항목으로 나눠 조사하는 것이다 보니 종합적 평가 결과에 다소 의외다 싶은 대목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상당히 공신력을 인정받는 조사의 결과에서 한국은 많이 발전했지만 일본은 뒷걸음질하는 모양새다. 한국은 외부적 압력이 크게 줄어든 반면 오히려 언론 스스로의 공정성이 꽤 훼손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외부적 요인이 언론자유를 상당히 제약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까닭인지 일본 미디어의 시각에는 울타리가 명확하게 눈에 띈다. 일본 정`재계를 장악하고 있는 우익세력의 입김이 미디어 환경을 규정해주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물론 한국 언론이라고 울도 담도 없는 광야에 선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경계는 외부의 압력보다 스스로의 편의를 위해 설정한 틀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한국 언론이 일본 미디어를 종종 교과서처럼 답습하고 애용하는 것은 넌센스다. 그것도 주로 한국을 향해 악담과 저주에 가까운 비난,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팩트가 않거나 비틀린 끼워맞추기식 수사가 많은 기사나 논평들을 마치 경전처럼 신앙하는 인용기사들이 한국 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의 몇몇 매체가 인용되기도 하지만 이들 기사나 논평의 경우 주로 통신사가 제공한 기사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일본 매체의 보도 수용은 좀 더 능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예전 같으면 모든 매체를 구독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제한이 따랐겠지만 요즘은 죄다 인터넷으로 검색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일본 매체의 인용이 더 늘어난 느낌마저 든다.

미국이나 유럽 언론들의 한국에 대한 우호적 보도가 늘어난 데 비해 일본만 악에 받친 듯 한국을 비난하는 기사가 쏟아져서 입맛에 맞는 것인지 아니면 일본어가 번역하기 수월해서인지는 좀 아리송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본 우익세력의 주장이 거침없이 한국 대형 미디어의 기사로 받아들여진다. 또 그렇게 수용된 기사를 일본 미디어들은 얼씨구나 하고 한국발 뉴스로 받아쓰며 주거니 받거니 저주를 키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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