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일본경제 백스텝의 원인 하나
[홍승희 칼럼] 일본경제 백스텝의 원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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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경제의 후퇴 징후는 여러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때는 세계 경제 2위로 미국을 넘볼 것이라는 일본인들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들이 나오기도 했다. 1980년대 초에는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으로 일본 땅 모두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온 적도 있다.

그랬던 일본이 일본인들의 표현을 빌리면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을 넘긴 지금도 세계 경제 3위로 기록돼 있으니 아직 후퇴라는 말을 하기는 이른 느낌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주요 산업들이 명백하게 후퇴하거나 몰락하고 있다.

그에 더해 현재 일본 정부의 부채 규모는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운신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어 일본을 넘어 세계 경제 전반에 위기를 부를 징조로 읽히며 전 세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고전하던 일본 기업의 부도율이 특히 최근 들어 현격히 높아지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물론 전 세계가 팬데믹 후유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특히 일본이 대한국 무역보복에 더해 무리한 올림픽 강행까지 얽히며 그 증상이 더 심각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우리 속담처럼 지금의 일본은 과거 잘 나가던 시절의 열매로 지금을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이 든 세대들이 보기에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추락의 속도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한국이 경제개발을 시작하던 시기에 일본은 한국의 롤모델이나 다름없었고 일본 제품이라면 일단 믿고 쓸 만한 품질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는 패전 후 침체된 경제를 한국전쟁 특수로 일거에 회복했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성장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모습을 보면 몰락하는 것은 참으로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겠다는 긴장감을 안겨준다.

그런데 한때 그렇게 잘 나가던 일본이 대체 어떻게 지금처럼 위태로운 결과를 초래한 것인지 매우 궁금해진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분석을 해보지만 단지 한 두 가지 이유로 그리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의 금융압박을 통한 일본 길들이기, 무능력한 세습 정치인들의 철없는 군국주의 부활의 망상, 일본인 특유의 좁은 시야 등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필자가 본 큰 원인의 하나는 일본 관료들의 엘리트주의가 아닌가 싶다. 특히 한국의 기획재정부가 모델로 삼았던 일본 재무성의 역할이 맡은 몫이 결코 적지는 않은 듯하다.

엘리트 관료들이 기업을 '지도'하고 기업은 그 길을 무조건 따라가는 문화가 지금의 일본에서도 여전히 발견된다. 일본이 잘 나가던 시절 패키지 해외여행에 나선 일본인들이 깃발을 든 가이드의 등만 보고 따라다니다 돌아간다는 농담이 퍼져있던 시절의 기억이 지금도 사라지지는 않은 듯하다.

이런 시스템이 롤모델을 따라가는 시기에는 꽤 효율적일 수도 있다. 한국도 근래까지 그런 시대를 지나왔고 아직도 한국이 그래야 한다고 여기는 나이 든 세대들이 남아있지만 일본은 그 정도가 한국보다 더 심한 것으로 얘기된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은 모범적인 엘리트 관리와 순종적인 기업인들이 일사분란하게 앞서 가는 사회를 목표로 따라가는 매뉴얼 사회에는 적합했지만 그런 매뉴얼이 무용지물이 되는 돌발 상황에 맞닥뜨리면 모든 스텝이 엉켜버린다. 개별기업의 창조적 도전에 기초하지 못한 일체화된 사회의 한계를 일본은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관료사회의 엘리트주의는 세습 정치세력과 손잡고 여전히 일본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 일본의 엘리트 관료주의를 답습한 한국의 관료사회, 그 중에서도 기획재정부의 모습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독자적 모델을 창조해 나가는 데 종종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아닌지 염려스럽게 한다.

오래전 필자가 재무부에 출입하던 무렵에도 이미 관료들의 엘리트 의식이 초래하는 한계를 지적하는 내부의 소수 의견이 있었다. 당시 재무부의 마이너리티에 속한 한 사무관은 행정고시 상위 득점자들을 독식하며 당시 경제기획원과 경쟁하던 재무부 관료들의 엘리트 의식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눈을 가리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양 부서가 합쳐진 지금의 기획재정부 내 문화는 과연 달라졌을까. 그들은 여전히 모피아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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