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내가 상위 12%라고?
[홍승희 칼럼] 내가 상위 1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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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지원이냐 일부 지원이냐를 놓고 말도 많았던 국민지원금이 결국 기획재정부의 강력한 주장에 이끌려 결국 88% 국민에게만 지원하는 선별지원으로 결정되면서 느닷없이 상위 12%에 들게 돼버린 국민들 중에는 화가 나기보다 어리둥절해진 이들이 많다. 누가 봐도 상위 20% 안에 들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이들이 국민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하니 황당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기준을 건강보험료 액수로 삼다보니 크건 작건 서울에서 집 한 칸 지니고 사는 이들 중 지역의료보험에 가입된 이들이 주로 그런 이들이다. 특히 내 집 가진 1인 가구로서 은퇴 후 지역의보에 가입해 가뜩이나 소득에 비해 부담스러운 건강보험료를 냈다는 이유로 상위 12%에 해당된다며 지원 대상에서 제외시켰으니 이를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인가 싶어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같은 자산규모를 갖고 있으면서 월 소득은 서너 배나 되는 이들도 받는 국민지원금을 훨씬 적은 소득을 얻으면서도 지역의보 가입자라는 이유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차별’이다. 차별이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 당연히 억울해진다.

이의신청이 많다고 하지만 실상은 아예 이의신청 접수조차 하기 어려운 게 의료보험료 액수를 기준으로 한다니 의료보험 산정기준부터 이의 제기를 시작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예상하고 아예 포기해버리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을 듯하다. 지역의보 금액의 산정 기준도 실상은 꽤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번 국민지원금 지급 기준을 하필 그 의료보험 납부액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말이 많은 것이다.

신청 기간 중 주민센터에 가보니 지원금 신청 및 이의신청을 받기 위해 아예 한 층을 통째로 내놓고 일을 보고 있었다. 주민센터 직원 중 절반쯤은 지원금 관련 업무를 위해 차출된 것으로 보였다.

이게 대체 무슨 낭비인가 싶었다. 주로 인터넷 이용이 힘든 노인들이 몰려들러 바글거리는 임시 사무실에서 자신의 일상적 업무를 뒤로 미루고 노인들의 하소연까지 들어주는 풍경에 한숨이 나왔다.

1차 지원금 때는 전 국민 지원이어서 그랬는지 과정도 간단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우선 자격이 되는지를 가리기 위한 1차 신청이 있고 그렇게 자격을 인정받으면 다시 지급 신청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이들은 다시 이의신청을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자격이 생기면 또다시 지급신청을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전 국민을 참으로 비참하게 만드는 정책이 돼버렸다. 코로나19의 긴 팬데믹 상황에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를 주자고 시작한 정책으로 이토록 국민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도 참 재주다 싶다.

처음 국민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갈라놓아 88%의 국민을 비참하게 만들더니 그마저도 복잡한 신청절차를 둬서 절차를 밟다말고 또 비참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12%를 제외시킴으로써 예산이 얼마나 크게 절약됐는지 따져보면 이건 나라 살림을 잘 사는 게 아니라 분위기만 우울하게 만드는 꼴이 돼 버렸지 않나 싶다.

오죽하면 기획재정부가 야당 어느 대선후보에게 줄 섰느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고의적으로 대통령과 여당을 골탕 먹일 생각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정책을 밀어붙였느냐는 비난인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주장을 보면 그런 사고방식으로 과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전 세계적으로 변화할 경제체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세계 각국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지만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어가면서 일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 전 국민이 생존할 수 있을지 방법을 모색해야 할 텐데 과연 지금의 경제 관료들이 발상의 전환이 가능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4차 산업시대의 일자리는 결코 과거처럼 거대 기업에 의한 대량 채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더불어 돈을 벌기보다 재정 지원이 필요한 복지, 연구, 창작 등 여러 분야의 국가 차원 일자리에도 더 돈을 써야 할 텐데 염려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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