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불완전함의 승리인가
[홍승희 칼럼] 불완전함의 승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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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의 빠른 성장과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이 보여준 효율적인 대처에 대해 세계가 궁금해 한다. 우리 스스로도 그 이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런저런 다양한 원인이 제시되지만 한국 사회는 스스로 실상 허점이 꽤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주저앉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계기로 삼아 한 단계 도약하는 기적을 보이곤 했다.

광복 이후 이유야 어떻든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이후 수많은 문제들을 낳았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제에 의해 수탈되었던 농지의 재분배를 위한 토지개혁도 온전하게 이뤄지지 않아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까지 땅 없는 농민 가정은 만연했고 봄철이면 식량이 바닥나 굶주림을 겪어야 하는 소위 보리 고개가 해마다 되풀이 됐다.

그런가 하면 신자유주의 물결이 한국사회를 휩쓴 이후 이것저것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경영권만 민간으로 바꾼 이름만 민영화일 뿐 공공지원은 더 늘어나는 기형적인 사례들도 등장했다. 사회복지도 꽤 불완전하고 건강보험은 여전히 본인부담 부분이 남아있고 아직도 대부분 입원환자는 치료비보다 비싼 간병비 부담을 져야 한다.

교육정책은 여전히 정권 바뀔 때면 한번씩 원칙부터 흔들리기 일쑤다. 전 국민의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정책의 일관성을 뒤흔드는 지경이다.

이밖에도 노동시장에서 하청에 재하청 등의 관행에 따른 피해가 끊이지 않고 기업이든 고객이든 갑질 논란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구석구석 문제꺼리가 산적해 있는 사회에 살면서 요즘은 팬데믹 상황 덕분인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한동안 우리사회에 횡행하던 ‘헬조선’의 탄식을 끌어안고도 한국사회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꾸준히 성장해왔다.

특히 한국이 민주화를 이룬 부분에 대한 젊은 세대의 자부심은 상당한 듯하다. 경제적 성장은 기성세대의 공이라 여기지만 민주화의 성취에는 자신들도 한몫 했다는 데서 오는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공정함’에 대한 매우 엄격한 요구는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커져가기만 한다. 불평등에 대한 거부감은 이전 세대에서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 큰 편이었던 한국이지만 특히 요즘의 젊은 세대는 단지 거부감을 갖고 불평하는 수준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비대면으로 의사표현을 하기 용이하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것이 촛불시민의 다수를 차지한 것 또한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사회에 비해 매우 매끄럽게 다듬어졌다고 알고 있던 일본은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 여러모로 우리와 비교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일본은 적어도 이번 팬데믹 이전까지 ‘매뉴얼의 사회’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각종 재해에 대해서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사전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런 매뉴얼 사회가 오히려 예상치 못한 긴급 상황에서는 더 큰 맹점을 드러냈다. 시급한 구호활동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매뉴얼이 없어서’ 행동하지 못하는 공무원이나 관계자들을 세계 언론들이 조명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의료보험 100% 보장한다던 영국이 가벼운 환자를 거부하는 의료상황으로 인해 팬데믹 초기에 오히려 경증 혹은 무증상 환자들을 방역 그물망에서 빠져나가게 만들며 엄청난 확산을 초래하기도 했다. 평소 가벼운 증상에도 병원을 자주 찾는 한국에 비해 의료보험 보장률이 높은 사회일수록 의료 서비스는 거칠어지는 경향이 있는 탓이다.

이것저것 구멍이 숭숭 뚫린 듯한 한국사회는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국민 개개인의 상황 적응력을 높인 까닭인지 스스로 상황에 맞는 판단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게 만들었다. 민주화 과정을 겪으며 높아진 시민의식도 큰 몫을 하고 있지만 그 못지않게 불완전함이 주는 적당한 불안감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다.

1980년대 청장년층에서도 많이 읽혔던 동화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깨진 동그라미가 잃어버린 부분을 찾아 끝없이 헤매다 꼭 맞는 짝을 만났지만 결국 다시 헤어져 떠난다는 줄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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