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상장 속 물가상승' 슬로우플레이션이 온다
'저상장 속 물가상승' 슬로우플레이션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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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병목·그린플레이션 여파···유가·에너지 가격 급등세
70년대와 같은 스테그플레이션 가능성은 과도한 우려
"GDP內 에너지 비중↓·양호한 경제성장···세계경제 견실
원유 시추 시설 (사진=픽사베이)
원유 시추 시설 (사진=픽사베이)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국제유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고 경제 하방압력은 커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세계를 흔들고 있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과거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보다는 '슬로우플레이션'을 맞이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경기 침체로 이어지진 않지만, 저성장 기조 속에서 물가가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다.

슬로우플레이션이란 '슬로우(slow)'+'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성장이 마이너스(-)로 내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저성장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는 것을 뜻한다. 즉, 경기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이어가는 가운데 인플레이션만 발생하는 상황을 말한다. 경기가 역성장을 겪으면서 물가는 뛰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상황보다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제 흐름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최근 글로벌 경기 흐름을 살펴보면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세가 가팔라지면서 우리 경제는 일상으로 전환·회복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수요를 공급이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 병목 현상과 함께 '그린플레이션'(친환경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비용 증가로 생산이 줄어들면서 자원 가격이 뛰는 현상), 중국-호주 무역전쟁, 영미권 구인난 등으로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자 국제유가·천연가스·석탄 등의 가격이 급등하는 '에너지 대란'까지 발생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0.52달러(0.63%) 오른 배럴당 92.96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유가는 4거래일째 뛰면서 지난 2014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으며, 12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85달러대를 넘어섰다. 세계 석탄 가격의 기준이 되는 호주 석탄 가격은 최근 5년 중 가장 높으며, 천연가스 역시 연초 대비 2배 이상 급등했다.

높아진 자원 가격은 물가를 높이고, 경제를 둔화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은 지난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며, 지난달 중국 PPI도 전년 동월 대비 10.7% 상승해 25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폭을 갈아치웠다. 우리나라 역시 9월까지 6개월째 2%대 물가상승률을 기록 중이며, 10월엔 3%까지 올라갈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중국 3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4.9%를 기록해 시장의 예상치인 5.0~5.2%를 크게 하회했다. 올 1분기 성장률이 18.3%까지 상승했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세계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경제 둔화는 세계경기 성장에도 적잖은 충격이 전해질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3분기 성장률을 7%에서 3.1%로 대폭 낮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과 중국 등이 포함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7.6%에서 6.5%로 1.1%p 내려잡았다.

이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세계를 덮쳤고, 글로벌 증권·환율시장에도 '리스크오프(위험자산회피)' 심리가 팽배해졌다. 미국 채권 금리는 뛰고, 증시는 고꾸라졌다.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들의 가치는 고꾸라기 시작했고, 엔화, 유로화 등 달러를 제외한 세계의 기축 통화들 역시 강(强)달러 앞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주요 투자은행(IB)들은 과거 1970년대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이 작성한 '국제금융시장 동향 및 주요 이슈'에 따르면 세계 경제의 에너지 부문이 국가총생산(GDP) 내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보다 축소되고, 양호한 경제 성장 흐름으로 볼 때 경기 침체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측의 제약 요인이 점차 수요 증가를 따라잡고 있고, 물가상승률도 곧 정점을 지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각종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내려갔지만, 미국 경제 성장률은 상당기간 잠재성장률을 상회할 전망이다. 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장기 인플레이션 통제 능력도 양호하단 평가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은 지난 2005년, 2007~2008년, 2010~2011년과 같이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던 시기에 나타난 성장 둔화, 물가 상승의 슬로우플레이션이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국내 경제계에서도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다소 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이주열 한은 총재는 "(현재 물가 상황은) 공급 원인에 따른 것이며, 여전히 세계 경제는 견실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반적인 글로벌 경기의 흐름은 과거 감산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의 현상과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며 "경기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가 상승으로, 다시 경기가 둔화된다면 에너지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전이되진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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