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삼성 구조조정說과 초격차
[데스크 칼럼] 삼성 구조조정說과 초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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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을 통해 이렇게 이른 시일 내 초일류 기업을 만든 것은 한국 뿐일 것이지만, 문제는 카피 모델만으로는 더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을 이끌었던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이 최근 TV특강에서 강조한 한국 기업과 산업에 대한 평이다.

한국 기업들은 과거 기술 선진국들이 잘 만들어놓은 제품을 근면, 성실, 희생을 통해 빨리 쫒아가는 소위 '패스트팔로어'였다. 한번도 남이 해보지 않은 것을 새로 개척해 본 적이 없다는 게 한국 산업과 기업의 현재 위치다.

"지금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실제 지난 20년간 경제성장률을 보면 지속해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제일 먼저 변해야 할 것은 기업이다."

이제는 새로운 길을 먼저 개척하는 '퍼스트무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역시 메모리 반도체에 국한되지 않고 파운드리, 시스템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초격차를 이뤄내기 위한 고민이 많을 것이다. 

정보지, 이른바 지라시에 한번씩 나돌았던 삼성 구조조정설이 최근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네트워크 사업부에 대한 매각,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경영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하는 사업점검, 심지어 메모리 사업구조에 대한 재편 등등 많은 이야기들이 거론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의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경영진단, 지난해부터 이어온 보스톤컨설팅(BCG)에 맡긴 지속 가능한 준법경영체제에 대한 컨설팅 등 삼성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 그만큼 국민적 관심이 크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나돌고 있는 이야기의 상당 부분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일축하는 입장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PC매각설, 게임사 인수설, 네트워크 매각설 등 그간 제기된 많은 예상들 역시 빗나갔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나돌고 있는 이야기들이 전혀 개연성 없는 '說'로만 치부할 정도일까.

거론되는 파운드리 분사설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용 칩(AP)을 포함, 스스로 설계한 것을 스스로에게 생산을 위탁하는 면도 있다. 대만의 TSMC와 경쟁하긴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애플과 테슬라 등 테크공룡들의 위탁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TSMC의 사업구조와 비교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는 퀄컴 등 이른바 '고객'과 경쟁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에 이 사업이 속한 DS부문의 직원수는 2018년 말 5만2095명에서 올해 3월말에는 6만1374명으로 18% 가까이 늘었다. 물론 호황기인만큼 인력을 늘렸지만, 메모리 반도체의 슈퍼사이클이 끝나고 다운사이클로 들어가게 되면 인력수에 대한 고민을 안할 수도 없다. 반도체가 불경기일 때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등 다른 사업이 실적을 뒷받침해 주는 백업효과도 과거만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같은 관점에서, 이 정부 들어 국정농단 사건 등 끊임 없이 재판을 받아온 이재용 부회장은 누구보다도 미래동력 확보에 대한 갈망이 클 것이다.

이미 LG와 SK는 미래 동력인 배터리를 분사하고 GM,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와 손잡아 현지 생산을 확대하는 동안 삼성SDI는 이제서야 스텔란티스와 합작법인 설립을 공식화했다. 

이 부회장이 강력하게 밀어붙인 바이오사업체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역시 아직도 재판 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 회사의 회계 처리 문제는 결국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간 합병비율을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했는지 여부로 귀결된다. 넓게 보면 경영권 승계 관련 국정농단 이슈가 아직도 이 부회장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셈이다.

세간에서는 화천대유 사건에서 2014년 당시 성남시 대장동 땅값이 어디로 튈지 몰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삼성 역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결정할 무렵 합병비율의 기초 데이터인 두 회사의 향후 기업가치를 어떻게 알 수 있었겠냐는 시각도 있다. 오히려 삼성으로서는 한국공인회계사회에 위탁 감리를 받은 이후 해당연도의 재무제표가 포함된 증권신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해 적합통보를 받는 절차마저 밟았다.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한 미래동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는 전문경영인보다 총수가 나서서 리스크를 더 짊어지기 마련이다. 근래 들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총수들이 틈틈히 해외 출장길에 오르며 고군분투하는 이유다. 

초격차의 범위를 넓혀가려는 삼성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한다. 

기업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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