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일본 경제구조에서 배울 것
[홍승희 칼럼] 일본 경제구조에서 배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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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저성장 고물가 추세가 나타나는 것 아니냐고 염려하는 소리들이 나온다. 그에 비해 일본에서는 저성장 저물가를 걱정한다. 저성장이야 어느 사회가 되었든 저어할 일이지만 고물가와 저물가는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를 따져볼 때가 되었다.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전 세계 경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전략을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팬데믹이 오기 전까지는 디플레이션이 전 세계적 고민거리였다. 따라서 적정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전문가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기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은 각국 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수준이 됐다. 그 가운데 팬데믹 과정에서 대폭 늘어난 각국 정부의 양적완화 혹은 재정지출 확대로 인한 재정 발 요인이고 이는 금리인상 등 회수 가능한 부분이어서 시간을 두고 관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공급망의 문제와 더불어 산업재편기의 변화까지 겹치면서 또 다른 인플레 요인들이 겹쳐서 발생했다. 미·중 갈등에 뿌리를 둔 공급망 문제와 자원 무기화의 움직임 등이 인플레이션을 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공식 통계’상 물가상승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기재부의 고답적 정책방식이 가계대출 대신 사업자대출을 늘렸지만 결과적으로 이 대출이 더 다양한 부동산투자로 몰리면서 다른 물가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대신 부동산시장은 더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흔히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노래하고 그렇지 않으면 기업들이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고 협박하지만 실상 투자의욕이 없는 기업에 쏠린 금융지원, 재정지원이 부동산 투자로만 쏠리면 일자리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더 이상 기업을 미끼로 부동산 투자자금을 빌려주는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이미 우리는 30년 전 일본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다. 당시 일본에서도 부동산 열기가 심각했고 그 기류 속에 기업이고 개인이고 경쟁적으로 과도한 대출을 받아 경쟁적으로 부동산 매입에 나서며 가격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됐다.

그러다 결국 버블이 터졌다. 부동산 가격은 삽시간에 대출액 이하로 떨어지며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개인도 기업도, 나아가 금융기관들도 줄줄이 파산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일본 경제는 서서히 하락세로 접어들며 기운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우리 속담처럼 1980년대 호경기 시절 쌓아올린 경제력으로 아직까지는 선진국으로서 잘 버텨왔지만 이제는 '잃어버린 30년'이라는 푸념을 하며 사회적으로 새로운 활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일본 경제를 버티고 있는 것은 정부 부채를 과도하게 늘리면서까지 기업 도산을 막다보니 일자리는 유지되지만 개인소득은 시간이 지나도 늘어나지 못해 1인당 GDP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다른 나라들은 인플레이션에 걱정이 커지는 현재에도 일본은 물가상승률이 제로 상태라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문제는 일본의 소비자 물가가 제자리라고 생산자 물가까지 제자리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일본이 갈라파고스화 되어 간다지만 세계의 밸류체인에서 완전히 고립될 수는 없으니 당연히 원자재 가격 상승 압박을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산자 물가는 매우 큰 폭으로 올랐지만 소비자들의 구매 여력이 너무 낮아 물가상승분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따라서 결국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생산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어려움을 다시 정부의 양적완화로 대응하다보면 당연히 정부부채은 더 늘어나고 좀비기업 또한 더 늘어나게 된다.

일본 정부의 경제대책이 결국 일자리 보전을 위해 기업 지원에만 힘을 쏟은 결과 실업률은 관리할 수 있었으나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저임금 노동은 확대됐다. 그런 노동환경은 결국 일본 국민들의 소비여력을 갉아먹으며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물가상승 요인이 아무리 커져도 생산자는 섣불리 소비자 가격을 올리기 어렵고 정부 또한 그런 생산자의 파산을 방치하지 못해 다시 지원에 나서야 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가난한 국민으로는 기획재정부가 추구하는 '성장'을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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