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고승범, '가계부채·금융발전' 두마리 토끼 잡을까
'취임 100일' 고승범, '가계부채·금융발전' 두마리 토끼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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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가계대출 규제···"시장안정" vs "서민고통"
금융권에 잇단 친시장적 제스처···숙원사업 해결도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고승범 금융위원장의 지난 100일간의 행보는 '가계빚 잡기'로 요약된다. '가계빚·집값 안정화'란 특명을 안고 지난 8월 말 취임한 고 위원장은 유례없이 강도 높은 가계대출 규제를 펼쳤다.

3개월이 지난 지금, 가계부채 증가율은 하락세로 돌아섰고, 식을 줄 모르던 부동산경기도 조정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비판 여론도 적지 않다. 전방위적인 규제로 대출을 받지 못한 서민 피해자들이 속출하면서다.

문재인 정부의 사실상 마지막 금융위원장인 고 위원장의 가계부채 잡기 행보는 훗날 시장 안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함께 과도한 숫자(총량규제) 맞추기로 서민고통을 외면했다는 평가로 나뉠 전망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고 위원장은 오는 8일 취임 100일을 맞이한다. 행정고시 28회 출신으로 오랜 기간 금융위원회에서 업무를 봤던 그는 2016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으로 적을 옮겼다가 지난 8월 5일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되며 5년 만에 친정으로 복귀했다. 이후 인사청문회를 거쳐 8월 31일 취임했다.

첫 번째 과제는 가계부채 급등세 안정화였다. 코로나19 여파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전년도(4.1%)의 2배 수준까지 치솟는 등 여건은 좋지 않았다. 실물경제 여건은 개선되지 않았는데, 금융·자산시장으로의 자금 쏠림은 이어졌다. 금융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자칫 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둬야 했다.

고 위원장이 찾은 해법은 전방위적인 '대출 총량 관리'다. 가장 먼저 올해 상반기 이미 7%대까지 치솟은 가계대출을 연간 목표치인 5~6%대로 맞추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은행들은 대출을 중단하거나 한도를 대폭 축소해야 했다. 여기에 대출 수요를 줄이기 위해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크게 올리면서 대출금리도 급등했다. 총량 관리의 결과로 피해를 입는 대출자들이 속출하면서 금융위원회는 서민·실수요자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그럼에도 고 위원장은 총량 관리 기조를 굽히지 않았다. 여기엔 1998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등 과도한 부채와 금융불균형 확대가 시스템 위기로 전이됐던 사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경험이 바탕이 됐다.

실제 고 위원장은 지난 3일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 총량 규제에 대해 "당장은 인기가 없고 쉬운 길이 아님을 알지만 금융안정을 위해 과단성 있게 추진해야만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방위적인 총량 규제는 실제 가계부채 증가세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월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57조9000억원으로 전월보다 5조2000억원 증가했다. 9월 증가액 6조4000억원보다 줄어든 규모다. 고 위원장 취임 이후 월별 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꾸준히 축소됐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부동산 가격도 조정국면에 들어간 모습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주 서울 아파트가격 상승률은 0.10%로 6주 연속 축소세를 보였다. 아파트가격 선행 지수로 여겨지는 서울 매매수급지수는 지난달 29일 98.0으로 지난주보다 0.6포인트 하락한 바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자금줄을 크게 조이면서 주택 매수심리가 악화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잇단 친시장 행보···업권별 숙원사업 해결사로

가계부채 안정화와 더불어 금융업권과의 소통 강화도 고 위원장이 주력하는 분야다. 취임 직후 금융지주사 회장단과 만남을 가진 고 위원장은 은행업권, 증권업권, 보험업권, 여신전문금융업권 등과 발빠르게 소통하고 있다. 잇단 간담회를 통해 업권별 숙원사업을 해결해주는 등 '선물보따리'를 풀면서 시장 친화적 제스처를 내비치고 있다.

앞으로의 행보도 금융규제 완화, 금융회사 신사업 진출 허용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고 위원장은 지난 9~11월 진행한 금융업권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향후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큰 틀에서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에 장애물인 규제들을 개선할 계획이다. 빅테크에 대항하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모든 금융업권이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만큼 가능한 사업영역을 대폭 넓혀줄 예정이다.

세부적으로 은행의 신탁·투자자문업 범위를 확대해 종합재산관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겸영·부수업무도 대폭 확대된다. 은행 플랫폼에서 금융서비스 외 배달·통신서비스 등을 상시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결제업·페이 등을 기반으로 몸집을 키워온 빅테크와의 경쟁에 특히 취약한 카드업계를 위해선 종합결제사업자 전환을 지원한다. 앞으로 카드·캐피털사는 자사 플랫폼을 통해 종합결제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밖에 보험사 등에도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오픈뱅킹 참여를 허용할 방침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그동안 금융업은 키워야 하는 산업보단 다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산업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고, 금융소외론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대출규제와는 별개로 오랜 기간 숙원사업이었던 분야를 크게 열어준 것에 당국이 친시장적으로 돌아섰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업권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친시장 환경이 계속 조성될지는 미지수다. 차기 정부가 내년 5월 들어서는 만큼 고 위원장의 임기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음 금융당국 수장이 고 위원장의 친시장적 기조를 이어갈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고 위원장이 잇달아 금융업권과 소통을 이어가는 데는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금융발전의 초석을 다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으로서 코로나19로 시장에 불어난 유동성이 혁신 금융산업으로 흐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고 위원장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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