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권 세대교체가 반가운 이유
[기자수첩] 금융권 세대교체가 반가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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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파격이란 말로는 부족하다." "세상이 변하긴 했어도 금융권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 달 여 전 네이버가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1981년생 여성'을 선택하자 금융권에서 나온 반응이다. 대체로 긍정적인 시각이었지만, '젊은 리더가 대기업을 잘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뚜렷하다. 업종의 특수성을 거론하며 금융권과는 먼 얘기라고 치부하는 거리감도 느껴진다.

타 업권에 비해 보수적이고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금융권에서의 이런 반응은 당연해 보인다. 그간 업계에선 '성과주의'를 내세운 인사에서도 그 자리에 걸맞은 연륜이 전제가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금융 분야가 규제 산업인 데다 금융은 물론이고, 당국과 소통을 위해선 어느 정도 중량감있는 임원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디지털 혁신을 외치면서도 인사에 있어선 낡은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금융지주 수장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윤종규(66) KB금융 회장은 지난 2014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조용병(64) 신한금융 회장은 3연임이 벌써부터 점쳐지고 있다. 손태승(62)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모두 변화보단 안정을 추구한 결과다. 

70세 나이 제한 때문에 교체가 불가피한 김정태(69) 하나금융 회장의 후임으로는 함영주 부회장이나 지성규 부회장 등이 거론된다. 그룹 안팎에서 후보들을 평가할 때 조직 장악력이나 경험, 중량감 등이 중요시 여겨지는 걸 보면, 파격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런 금융권에도 최근 기류 변화가 읽힌다. 세대교체 바람이다. 금융지주 중 가장 먼저 인사를 단행한 KB금융은 본격적인 세대교체에 나섰다. 실제로 차기 KB국민은행장으로 내정된 이재근 후보는 1966년생으로 주요 시중은행장 중 가장 젊다.

계열사 대표 역시 한층 젊어졌다. KB금융은 1970년생인 김종필 KB인베스트먼트 대표부터 이현승 KB자산운용 대표, 이창권 KB국민카드 사장, 허상철 KB저축은행 대표 등 모두 50대로 포진시켰다. 차세대 리더를 육성해야 한다는 윤종규 회장의 뜻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신한금융의 인사도 상황이 비슷하다. 부동산리츠 전문회사인 신한리츠운용은 1969년생의 김지욱 신한금융투자 부사장을 CEO로 신규 발탁했고, 신한자산운용 전통자산부문엔 조재민(1962년생) 사장을, 신한DS에는 조경선(1965년생) 사장을 통해 50대를 전진배치했다. 타 업권처럼 70~80년대생이 임원진에 오르진 않았으나, 금융권 특수의 보수적 문화를 고려했을 때 괄목할 만한 변화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혹자는 이를 두고 세대교체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의 필수조건이라는 장사꾼의 감각이 금융권에도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다소 느리긴 하지만 세대교체의 흐름을 따라가려는 금융권의 노력을 후하게 바라본 모양새다.

'젊은 피'로 무장한 빅테크와의 치열한 경쟁이 맞물린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 금융권의 이런 행보는 환영할 만하다. 임원이 젊어지면 조직에 활력이 생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 역시 빨라지기 마련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세대교체를 통한 '체질개선'이다. 그대로 있으려는 관성을 버리고, 미래를 대비할 때가 왔다. 젊은 감각만이 금융권이 타깃으로 삼은 MZ세대를 사로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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