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양과 늑대를 한 울타리에 키우지 마라
[전문가 기고] 양과 늑대를 한 울타리에 키우지 마라
  •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 argos68@naver.com
  • 승인 2021.12.31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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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울타리 안의 양과 늑대의 동거. 환경부가 '녹색'이라는 한 울타리에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을 묶어 지난 30일 발표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는 딱 그러한 모양새다. 어색함을 넘어 우려스럽고 위험해 보인다.
     
녹색분류체계는 6대 환경목표(온실가스감축, 기후변화적응,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자원순환, 오염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에 기여하는 녹색경제활동들의 분류를 말한다. 진정한 녹색경제활동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해 녹색위장행위인 그린워싱(greenwashing)을 방지하고 녹색사업·녹색기술에 더 많은 자본투자를 유도할 목적으로 마련한 제도다. 

환경부는 이 녹색분류체계의 세부 녹색경제활동으로 총 69개를 제시했다. 녹색부문 64개, 전환부문 5개다. 녹색부문은 재생에너지 생산 등 탄소중립과 환경개선에 필수적인 진정한 녹색경제활동이며, 전환부문은 탄소중립이라는 최종 지향점으로 가기 위해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경제활동이다. 이 전환부문에 화석연료 기반의 LNG(액화천연가스)와 블루수소 생산 등이 한시적으로 포함돼 있다.
 
이번 녹색분류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LNG, 블루수소 등이 포함된 전환부문을 녹색으로 분류했다는 점이다. LNG 발전은 시추·생산, 정제·액화, 운송, 재기화, 소비라는 전과정을 통해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전과정을 고려하면 LNG 발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석탄 발전의 70% 수준이다. 즉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에너지 인프라의 화석연료 의존도를 고착해 오히려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될 위험성이 높다. 블루수소 역시 전과정을 고려하면 기후위기 대응에 부합하지 못한다. 환경부는 "탄소중립에 기여도가 높은 활동을 엄격하게 선정해 높은 수준의 인정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에 녹색분류체계 포함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사슴을 아무리 말이라고 우겨도 사슴은 사슴이다. 황색을 아무리 녹색이라고 우겨도 황색은 황색이다. 때문에 녹색분류체계의 전환부문 포함은 정부가 앞장 서서 그린워싱을 정당화 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도의 취지는 이 지점에서 먼저 몰각(沒却)돼 버린다.
  
이러한 이유로 시민사회는 환경목표 기여도에 따른 구분인 '신호등 분류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즉 분류체계를 녹색 뿐만 아니라 황색, 적색으로 확장하고, LNG, 블루수소 등 전환부문은 '황색'으로 분류하자는 주장이다. 신호등 분류체계는 '유럽연합 지속가능금융 플랫폼'이 제출한 권고안이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 발표한 분류체계 프레임워크이기도 하다. 이마저 힘들다면, 녹색부문만 우선 연내에 발표하고 전환부문은 사회적 논의를 더 거치자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30일 발표로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녹색분류체계는 금융기관이 향후 녹색투자 사업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그런 점에서 LNG 등 전환부문 포함은 금융기관의 투자 논리와 관행을 고려하면 악수(惡手)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녹색부문은 다수 프로젝트에 대한 소규모 투자, 전환부문은 소수 프로젝트에 대한 대규모 투자라는 특성을 가진다. 이는 금융기관이 녹색부문보다는 전환부문에 더 투자동기와 매력이 높을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금융기관의 녹색투자 자금은 한정돼 있다. 이 자금이 LNG, 블루수소 등 전환부문으로 편중될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재생에너지 등 진정한 녹색부문의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도 이는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다. 화석연료에 투자하고도 대내외적으로 ‘녹색금융’으로서의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녹색투자는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녹색사업·녹색기술에 더 많은 자본투자를 유도한다는 제도의 취지는 이 지점에서 또 몰각돼 버린다. 사실, LNG의 경우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지 않는 지금도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수익이 되기 때문이다. 황색으로 분류했어도 투자한다는 말이다. 금융의 논리다. 이런 점을 간과한 채 일부 산업계의 요구를 수용해 버린 환경부의 오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정부가 현행 녹색분류체계를 신호등 분류체계로 개편하지 않는 이상, 전환부문에서 한시적으로 인정한 수년 동안에는 녹색이라는 한 지붕 아래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이라는 양과 늑대의 위험한 동거는 불가피하다. 일단 현 상태에서 몰각될 가능성이 높은 제도의 취지를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필자는 그 방안이 바로 '분리 공시'라고 생각한다. 녹색분류체계의 주 이용자인 금융기관은 물론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도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을 별도로 공시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환경부와 금융위에 진지한 고민과 수용을 요구한다. 향후 녹색분류체계를 합리적으로 개정하기 위해서도 분리공시는 반드시 필요하다. 더 많은 자본이 진정한 녹색에 유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녹색분류체계의 주인은 바로 녹색부문이다. 향후 신호등 분류체계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 태도를 기대하며, 서양 격언 하나를 남긴다. 양과 늑대를 한 울타리에 키우는 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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