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유권자 손에 공 넘어온 종전선언
[홍승희 칼럼] 유권자 손에 공 넘어온 종전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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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하고 한·미간 조율을 거친 종전선언문 내용이 비공식적으로 북한에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한·미나 북한 어느 쪽에서도 구체적 내용을 밝히고 있지 않아 상세한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북한이 원하는 내용이 어느 정도 반영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북한이 보기에 알맹이 없는 내용이었다면 당장 반응이 나왔을 것이지만 현재 북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기에 그런 추론이 가능하다. 다만 북한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한국이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기 정부가 이 선언문의 내용을 이행할 의지를 갖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으니 시간을 두고 검토하고자 하는 것일 터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종전선언으로 현재 북한이 감당하기 어려운 군비경쟁을 피하고 남북 간 교류가 확대되는 것일 테니 차기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갖고 있느냐 여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종전선언이 이 시점에 중요한 이유는 남과 북이 더 이상 적대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은 군비경쟁에 쏟을 힘을 좀 더 북한내 생산활동으로 돌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도 이미 선진국 대열에 동참해야 할 여러 국제적 현안이 넘쳐나는 데다 군사적으로도 세계 강국이 된 한국의 역할에 좀 더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적어도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반도가 전화에 휩싸이는 것을 방지할 가능성이 커지는 이점이 있다. 일단 유사시 있을지도 모를 중국의 북한 진공에도 남과 북이 협력할 여지가 생기며 그만큼 민족 통합의 과정이 단축될 수 있다.

북한으로서도 종전선언이 되면 생존을 위해 강요된 친중 노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아직도 이념적 프레임에 갇힌 이들은 북한과 중국의 이념적 결속을 두려워하지만 이미 중국은 내부적으로 사회주의적 지배논리를 수시로 동원하지만 이미 세계 제조업의 밸류 체인에 묶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의 달콤함을 맛본 상태다.

그 자본적 열매를 잃을 경우의 고통을 이번 미·중 무역분쟁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국에게 이념적 동맹이란 그리 단단한 결합이 아니다. 중국이 북한의 자원을 탐하고는 있지만 그 대가로서 지속적 지원을 해줘야 하는 북한이 성가신 대상이기도 하다.

지금도 국내나 미국의 보수 세력들 중에는 여전히 공산주의 세력의 결속력에 대한 우려로 중국과 북한을 싸잡아 한 보따리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자국 내 권력구조에 위협이 될 간섭만 아니라면 중국이든 북한이든 자국에 더 이득이 되는 세력과 손잡고 서로에게 등을 돌릴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특히 팬데믹 이후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고 있기에 경제적 이익을 쫓는 선택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미국이 북한을 인정하고 북·미 수교가 이루어지면 미군의 한국 주둔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가 모두 밝힌 바 있어서 '종전선언하면 주한 미군 떠난다.'고 고령층 유권자들 겁주는 소리를 하는 보수 정치세력의 주장은 그저 정치적 입지를 넓히려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주한 미군은 전시작전통제권이 온전히 한국 정부로 넘어오는 순간 어느 쪽으로든 상호 주둔할 수 있는 호혜적 군사동맹의 실체적 존재일 뿐이다. 게다가 주한 미군의 존재는 한국이 안보적 위협을 받을 때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기는 하지만 한반도를 벗어난 미군의 활동에 한국이 반드시 동행할 이유는 없는 게 한미 상호방위협력의 내용이라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 종전선언이 이 시점에 왜 필요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이는 오늘날의 한국이 휴전상태에 머물러 있음으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 대해 무지하거나 고의적으로 눈을 감는 비도덕적인 일이다.

2022년 현재 한국의 국제신인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휴전상태로 인한 코리안 디스카운트의 결과다. 해외투자자들 입장에서 휴전 중인 한반도, 남북 간의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 속의 한국은 여전히 불안요소를 안고 있는 투자대상인 것이다.

이제 한국은 이런 대외적 저평가를 극복하고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그렇고 또 남북 간 협력을 통해 유럽까지 이어질 철도를 연결하고 북한 내 천연자원 개발권을 더 이상 중국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도 종전선언은 서둘러야 한다. 그 선택이 지금 유권자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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