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HDC현산의 무너져 내린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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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노제욱 기자] "충격과 아픔을 함께 겪고 계신 많은 광주 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권순호 HDC현대산업개발 前 대표이사)

"저희 HDC현대산업개발의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고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실종자분들과 가족분들, 광주 시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립니다" (유병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얼핏 보면 동일한 사고에 대해 사과를 표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고 발생 7개월여 만에 그것도 같은 지역에서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두 사고의 시공사는 모두 HDC현대산업개발이다.

지난 11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공사 현장에서 아파트 외벽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차량 20대가 파손되거나 매몰됐고, 1층에서 잔해물을 맞은 1명은 부상을 입었다. 현장 작업자 6명이 실종돼 수색을 벌이고 있으며, 이 중 1명을 발견했지만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지난해 6월에는 광주 동구 학동4구역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붕괴해 시내버스를 덮쳐 사망자 9명, 부상자 8명 등 총 17명의 사상자를 낸 '학동 참사'가 있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주 시민들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사고를 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당시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결국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후속 대처에도 문제가 제기된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11일 오후에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12일 0시가 다 돼서야 대표이사가 광주에 도착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리고 12일 오전 유병규 대표이사는 한 장짜리 사과문을 발표하고 취재진의 질문도 받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정몽규 회장은 아직 별도의 사과 조차 하지 않았다.

평소 안전에 대한 인식도 의문이다.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건설사들은 안전조직을 강화하는 등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유행처럼 번진 대비책 중 하나가 바로 '최고안전책임자'(CSO) 선임이다. CSO는 대표이사에 준하는 안전보건에 관한 조직과 인력, 예산을 총괄하고 권한과 책임을 가지는 직위다. 쉽게 말해 기업의 '안전 총책임자'다. 10대 건설사 중 7개사가 CSO를 두며 안전 강화에 나섰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은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CSO를 선임하지도 않았다.   

광주 시민은 물론이고 국민 대다수가 HDC현대산업개발에 등을 돌리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포함된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한 광주의 한 재건축조합은 이번 사고가 발생하자 컨소시엄 측에 시공사 계약 해지를 검토하겠다고 통보했다. 유명 부동산 카페에서는 "마음 같아선 네이밍(단지명)에서 아이파크를 빼버렸으면 한다", "10대 브랜드에서 아이파크를 빼야 한다" 등의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신뢰는 유리 거울 같은 것이다. 한 번 금이 가면 원래대로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외국의 명언이다.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신뢰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금이 갔다. 아파트는 다시 지을 수 있겠지만,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긴 힘들 것이다. 무너져 버린 외벽처럼, 이미 그들에 대한 신뢰도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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