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선거 볼모된 국책은행 지방 이전
[기자수첩] 선거 볼모된 국책은행 지방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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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올해 대선을 앞두고 지역균형 발전으로 포장된 '국책은행 지방 이전'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거대 양당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산업·수출입·기업은행의 지방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나선 것이다.

이들 후보의 목소리는 지방을 방문했을 때 더욱 커진다. 지역 국회의원, 지자체, 시민단체의 지지를 받으며 국책은행 이전을 약속하는 후보들의 모습은 어딘가 낯익다.

국책은행 지방 이전은 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다.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는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책은행 3곳을 포함해 공공기관을 대거 지방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지지하듯 국책은행 서울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안도 대거 발의됐다.

지난해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땐 김종인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만들겠다며 국책은행 지방 이전을 공식 지지하기도 했다.

정치권이 내세우는 근거는 '지역균형 발전'이다. 정책금융기관으로서 국가산업 지원이란 중책을 맡고 있는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면 자연스럽게 지역발전이 이뤄지고, 서울 집중 현상도 완화될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실제 지역발전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검증 결과는 부족한 실정이다. 오히려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따른 인구유입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전문기관의 분석도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효과 및 정책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10개 혁신도시 중 인구유입을 기존 계획만큼 달성한 곳은 부산과 전북 등 2곳에 불과했다. 정부가 10조원을 들여 이들 혁신도시에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추진해왔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다.

지역발전 효과 유무를 차치하더라도, 이들 정치권 주장의 가장 큰 문제는 국책은행의 업무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산업·수출입·기업은행은 국내산업 육성, 위기산업 지원, 구조조정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금융위원회 등과 긴밀한 소통이 필요한 곳이다.

실제 이들 은행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금융·자본시장 경색을 막기 위해 시행된 대규모 금융지원에 가장 먼저 투입된 곳들이기도 하다. 지방 이전 이후 이들 기관이 위기 대응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이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예측도 쉽게 가능해진다. 업무 효율성 저하와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력 유출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국책은행 노조에 따르면 대부분의 직원들이 가정, 육아 등의 이유로 지방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국책은행 지방 이전설이 계속되면서 이직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부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는 이같은 부작용에 대한 고민은 담겨 있지 않은 듯하다. 더구나 국책은행 지방 이전은 선거 지지율에 따라 같은 당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주제이기도 하다. 국가산업 지원을 책임지는 국책은행이 '표심잡기'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정치권 포퓰리즘에 피해를 보는 것은 국책은행 직원들과 이들 은행의 지원을 받는 고객과 산업이다. 더 나아가 정부의 산업재편 계획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포퓰리즘적 접근이 아닌, 국책은행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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