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선진국 한국에 부족한 것
[홍승희 칼럼] 선진국 한국에 부족한 것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은행 통계에는 전 세계에 229개 국가가 있다. 이밖에도 국제법상 국가로 인정받기는 하지만 그 지위가 애매한 나라들도 10개에 이른다.

그 가운데 한국의 위치는 상위 10개국 안에 들며 선진국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처음 한국이 OECD에 가입한다고 할 때만 해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가 벌써?’라는 의아함이 적잖았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이 선진국 그룹에 속하는 것에 대해 특히 젊은 세대들은 별달리 이상하다고 여기지는 않는 듯하다. 곤궁한 개도국 국민의 삶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 세대 간의 가치관의 차이는 급성장한 사회답게 그 어느 나라보다 더 극심할 수밖에 없다. ‘헬조선’을 얘기하는 젊은 세대의 불안과 좌절감을 나이 든 세대들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힘들긴 하겠지만 예전엔 그보다 더 못한 삶도 살았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도 분명 소수는 아니다.

이런 세대간의 견해 차이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또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가 겪고 있는 현실의 고통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세대는 수직적 사회의 불합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그런 수직적 사회의 가치관을 내면화해서 늘 타인과의 비교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심한 심리적 고통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너무 빠르게 성장한 사회가 앓고 있는 일종의 성장통인 셈이다.

이런 성장통은 개개인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다. 국가 운영과 관련해서도 여러 구석에서 발견된다. 대외적으로는 외형상 선진국이 됐지만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는 선진국다운 국가운영에 관해 철학적 고민이 충분하지 못한 까닭이다.

산업적 변화에 맞춰 기업들은 어쨌든 세계적 흐름을 잘 따라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권력의 마력’에 길들여진 관료사회는 늘 흐름에서 한 박자씩 늦다는 인상을 준다. 선진국을 뒤따라가던 개도국 시절에는 이런 더딤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 글로벌 리더국가로 올라선 상황에서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지난 90년대 중반 빌 게이츠가 한국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IBM과 경쟁에 나서기 시작했던 게이츠는 과학기술부를 두고 신흥공업국으로 두각을 나타내던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국 정부와의 대화를 원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관료들조차 빌 게이츠가 누구인지 관심도 없었고 따라서 장관 면담도 이루어지지 않았었다고 들었다.

미국의 글로벌 금융 지배력에 중국은 디지털 금융으로 도전을 시작했다. 미국도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닫고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그런 미국을 보며 한걸음 늦게 출발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한다고 들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남을 뒤따라가서는 1등을 할 수 없다고 임직원들에게 각성을 주문한 적이 있다. 지금 한국의 지도층에게 꼭 필요한 충고가 될 것이다.

한국은 이성계의 조선 5백 년 동안 국제적 감각을 잃었고 강자 앞에 줄서는 '사대'에 목매다 민족적 치욕을 초래했다. 변화가 느린 시대에는 그런 외교도 일면 유용성이 있었을 수 있다고 치더라도 결국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스스로 눈을 가림으로써 보지 못했고 망했다.

그 폐해는 아직도 한국의 보수 기득권층에 강하게 남아있다. 스스로 중심이 된 국제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강대국에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생각, 어느 한쪽에 줄을 서지 않으면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지나쳐 홀로 서야 할 미래를 가로막고 있다.

역사 속 수많은 문명은 모두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겼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간신히 배우는 그나마 강력했던 역사의 나라 고구려가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스스로를 천하의 중심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내가 있고서야 세상이 있다는 당연함을 망각하고 계속 어딘가에 매달려가야만 산다는 발상은 성인이 돼서도 부모가 도와줘야 독립할 수 있다는 캥거루세대의 응석과 닮았다. 국제관계에서 그런 응석을 받아줄 부모는 없다.

국제 역학관계 속에서 우리가 중심이 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실현시킬 외교를 펼쳐야한다. 하나의 평면도가 아닌 다차원적이고 유동적인 그림을 그려나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치열한 철학적 고민을 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더는 뒤로 물러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