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러 제재에 韓기업 '노심초사'···차, 반도체 모두 영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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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美의 대러 수출 통제 면제 미포함···수출 기업 피해 우려
현대차, 현지공장 가동 중단 "우크라이나 아닌 차 반도체 때문"
반도체 소재·원자재 부품 등 수급 우려에 전자업계도 예의주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대(對)러시아 제재에 나서면서 국내 산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특히 유럽 진출을 교두보로 삼은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러시아 현지에 공장을 두고 있는 기업들은 물론, 수출 기업까지 피해 우려가 나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은 러시아 수출 통제를 위해 수출통제리스트(CCL) 7개 분야 57개 하위 기술 항목에 대해 해외직접제품규제(FDPR)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FDPR은 미국 밖의 외국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소프트웨어, 설계를 사용했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강력한 제재 조항이다. 전자(반도체), 컴퓨터, 통신·정보보안, 센서·레이저, 해양, 항법·항공전자, 항공우주 등 분야에 관한 세부 기술 등이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FDPR 적용 예외 대상에 동맹국인 한국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규정대로라면 한국 기업들이 FDPR 적용 대상 제품을 러시아로 수출할 경우 미 상무부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며, 상무부 판단이 나올 때까지 관련 제품·부품의 러시아 수출이 일시 중단되게 된다.

자료=한국CXO
자료=한국CXO

먼저 국내 기업 중 러시아 현지에 가장 많은 법인을 두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경우 피해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CXO연구소가 러시아 해외 법인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16개 그룹이 러시아에 53개 법인을 설립했으며, 이 중 현대차그룹은 18곳으로 가장 많았다. 현대차와 기아, 현대제철, 현대건설, 현대글로비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위아 등이 러시아에 법인을 두고 있다. 이 밖에 삼성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등 러시아에 9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고 롯데그룹도 호텔롯데와 롯데상사 등 9개의 현지 법인을 세웠다. SK와 CJ, 두산, KT&G 그룹은 각각 2개의 법인을 러시아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대차가 이달 1일부터 5일까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을 중단키로 하면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지난해 초부터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에 따른 일시적 가동 중단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다만 현대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연간 생산량이 23만대에 달하는 만큼 사태가 지속될 경우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제너럴모터스(GM)에서 인수한 연 10만대 규모의 현지 공장도 올해 초부터 가동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기아의 리도오 위탁 생산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러시아에서 기아 20만5801대, 현대차 17만1811대를 판매해 현지 자동차 브랜드인 라다에 이어 전체 2위, 3위를 각각 차지했다. 시장 점유율은 각각 12.3%와 10.3%다. 그룹 합산 실적으로는 현대차그룹은 르노그룹(라다)에 이은 2위다. 특히 기아의 경우 러시아(글로벌 판매 비중 8%)는 국내(19%), 북미(27%), 서유럽(19%)에 이어 4번째로 큰 시장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올해 러시아 판매량 목표 45만5000대 달성도 요원해졌다. 시장에서는 현대차·기아의 손실이 4500억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러시아 규제로 인해 현대차는 최대 2000억원(지난해 순이익의 4%), 기아는 최대 2500억원(지난해 순이익의 5%)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 (사진=삼성전자)

반도체와 가전, 스마트폰 등 전자업계 영향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FDPR 제재 영향권에 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반도체에는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기술이 대부분 들어간다. 또 러시아로의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7400만 달러(약 885억원)로 전체 반도체 수출의 0.06% 수준에 그치지만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는 러시아 의존도가 작지 않다. 반도체 공정에서 핵심 소재인 네온·크립톤·제논(크세논) 물량 상당 부분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부 집계 결과 우크라이나·러시아산 비중은 네온 28%, 크립톤 48%, 제논 49%에 달했다. 

이와 관련,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공급망 측면에서 현재 내부적으로 재고가 충분해 단기적인 대응에 문제없을 것이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중장기화할 경우 우크라이나·러시아 외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판매 측면에서는 제재 대상 등을 알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매출 비중이 크지 않아 영향이 제한 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가전 양대 기업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러시아 현지에 TV와 가전 공장을 가동 중으로, 부품 수급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이 경우 완제품 생산 및 판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칼라구 지역에서 TV 공장을,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에 TV와 세탁기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반도체 설계 기술이 적용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들어가는 스마트폰 역시 FDPR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 수출 타격이 우려된다. 삼성전자의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30%로 1위라는 점에서 상당 부분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어느 품목이 어떻게 될지, 제재 내용에 대해 정부가 정리하는 대로 따를 것이며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사태가 장기화하면 글로벌 경기 위축을 비롯해 원자재 공급망 교란, 환율 변동 등 다양한 부작용 예상되는데 그 범위가 어디까지 될지도 예측하기 어렵고 여러 우려가 있는 만큼 긴장하면서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로선 미국의 수출 규제가 국내 산업계에 미칠 파장을 파악하는 데 시일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 상무부의 구체적인 수출 통제 리스트가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스트는 오는 3일 미 상무부가 공개하는 관보에 공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재 FDPR 면제 대상에 한국을 포함하기 위한 합의도 진행 중인 상황이다. 앞서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독자 제재에 나선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과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등 32개국은 FDPR 적용 예외 대상으로 발표했으나 우리나라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미국 측과 FDPR 적용 예외를 인정받기 위한 협의를 집중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이미 지난 1일 한미 양국은 FDPR 예외 적용 논의를 위한 국장급 화상회의를 시작했으며, 이번 주 한미 고위급 회담 등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 일환으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3일과 4일 미 상무부와 미 무역대표부(USTR) 고위급을 만난다. 여 본부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동맹국과 유사한 수준의 (대러시아) 수출통제에 동참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하고 그에 따라 양국 협의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합의를 끌어낼 것"이라며 "FDPR 면제에 대한 부분은 고위급 대면 협의를 통해 최대한 빨리 양국이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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