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이 '금리갑질' 오명 벗으려면
[기자수첩] 은행이 '금리갑질' 오명 벗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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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 공시제를 두고 '관치' 논란이 뜨겁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과도한 예대금리차를 겨냥해 '공시제도'와 '가산금리 적절성 검토'를 해결책으로 제시하면서다.

여기에서 논란이 인 부분은 단연 후자다. 예대금리차를 일괄 공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당국이 나서서 가산금리의 적절성을 검토하거나 담합요소를 점검하는 자체가 '시장금리 불개입' 원칙이 깨지는 일인 만큼, 업계의 긴장감은 한껏 높아진 모양새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와 가산금리로 이뤄진다. 이중 가산금리는 업무비용, 리스크 프리미엄, 목표이익률 등을 토대로 결정되는데, "은행이 예대마진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의 핵심 배경으로 작용하면서 정치권의 견제도 점차 강화됐다.

지난해 말 은행권의 예대금리 산정 과정을 들여다본 금융감독원도 일부 은행이 모범규준을 위반해 가산금리를 정했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이 은행권 금리산정 체계의 비합리성을 공개한다면 윤 당선인의 공약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될 터라 은행들은 금감원은 물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벌써 "가격 결정의 자율권을 없애겠다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나올 정도다.

업계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예대금리차 해소를 위해선 일괄 공시뿐 아니라 결국 가산금리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이뤄져야 하는데, 가산금리에는 은행의 영업비밀이나 노하우가 담겨 있어서다.

영업비밀인 가산금리가 공개되는 것도 곤란한 일이지만, 정부의 개입으로 금융시장의 질서가 깨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적잖다. 윤 당선인의 공약이 은행의 원가구조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문제는 깜깜이 방식인 금리산정 체계에 대한 금융소비자들의 불신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는 점이다. 논란의 빌미를 준 장본인 역시 은행이다. 그동안 은행들은 시장금리 상승에 따라 가산금리를 조정, 대출금리를 인상해왔지만, 그 산정 방식이나 수준에 대해서는 고객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금리를 조정하는 속도 역시 지나치게 빠르다는 지적이다. 실제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가산금리는 이미 3%대 중반을 찍었다. 특히 은행은 기준금리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가산금리를 올려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기준금리 인상국면에서는 가산금리를 더욱 올려받았다. 시장원리에 따라 금리가 결정된다고 해도 체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물론 은행이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사기업인 만큼, 금리를 통해 장사하는 것 자체가 문제 될 건 없다. 경영 자율성도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일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담합 없이 공정성이 담보돼 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결국 '금리 갑질', '은행=약탈자'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그간의 불신을 씻어내야 한다. '영업비밀'이라는 점을 내세워 논란에 결자해지하려는 자세가 없다면 금융소비자들의 불신과 은행권을 향한 따가운 시선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정부의 시장 개입 없이도 금리체계에 대한 불신을 해소시키는 길을 은행들 스스로가 모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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