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오픈런' 적격대출, 은행·점포별로 제각각···고무줄 기준에 혼란
[단독] '오픈런' 적격대출, 은행·점포별로 제각각···고무줄 기준에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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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농협·우리銀 등 시중은행, 이달부터 판매 재개
적격대출 금리, 연 3.95%로 일반 주담대보다 낮아
상황에 따라 KB시세 또는 실제 매매가격으로 산정
은행 영업점 (사진=서울파이낸스DB)
은행 영업점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 최근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매입을 위해 은행 영업점을 찾은 이 모(31) 씨는 적격대출 상담을 받다가 발걸음을 되돌렸다. 배정된 한도가 남아있다는 소식에 곧바로 대출을 실행하려고 했지만, 대출액이 KB시세가 아닌 실거래가 기준으로 산정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KB시세보다 가격이 낮은 급매를 잡았던 이 모 씨는 예상보다 적게 나오는 대출액 때문에 다른 은행을 찾아야 했다.

적격대출을 받기 위한 '오픈런(물건을 사기 위해 개점하자마자 달려간다는 뜻)' 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은행들의 대출액 산정 기준이 제각기 달라 차주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KB부동산시세를 기준으로 대출을 내주는 은행이 있는 반면, 일부 은행은 KB시세와 실거래가 중 더 낮은 금액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등 보수적인 심사를 진행하고 있어서다.

뒤죽박죽인 대출 기준은 같은 은행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한 은행 내에서도 영업점의 재량에 따라 대출 한도가 달라지면서 시장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적격대출을 취급하는 은행들이 각기 다른 기준을 대출 심사에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격대출은 무주택자나 곧 주택을 처분할 1주택자가 시가 9억원 이하의 주택을 구입할 경우 최대 5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 장기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이다.

현재 적격대출을 판매하는 금융회사는 우리·하나·NH농협은행을 비롯해 부산·경남·수협·기업·제주은행, 삼성생명 등이다. 주요 시중은행 중 우리은행은 지난 1일부터, 하나은행과 농협은행은 전날부터 적격대출 판매를 시작했다.

적격대출의 금리는 연 3.95% 수준으로, 전달(3.8%)보다 0.15%p 올랐지만, 시중은행의 일반 주담대 상품(연 4~6%)보다 여전히 낮기 때문에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은행들은 적격대출 심사를 진행할 때 통상 KB시세를 적용해 주택가격을 따진 후 차주별로 대출액을 산출한다. 대출액 역시 주로 실제 매매가격보다 낮은 KB시세를 기준으로 매겨지는 게 일반적이다. KB시세는 상위·일반·하위 평균가로 나뉘는데, 2층 이상은 일반 평균가를 적용하고 1층은 이보다 가격이 낮은 하위 평균가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 아파트 밀집 지역 모습. (사진=이진희 기자)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 아파트 밀집 지역 모습. (사진=이진희 기자)

예를 들어 실 매매가격이 8억원, KB시세 6억6000만원인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 대한 적격대출을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기존 대출이 없는 무주택 수요자가 받을 수 있는 은행대출액은 KB시세를 기준으로 2억6400만원(LTV 40%)이다. 여기에서 소액임차보증금을 뺀다고 해도 은행들의 대출 가능액은 같다.

문제는 실 매매가격이 KB시세보다 낮은 경우다. KB시세가 더 높게 형성돼 있다면 대출액도 많아져야 하지만, 이 경우 은행마다 기준이 달리 적용된다. 실제 농협은행은 KB시세를 기준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반면 하나은행은 가격이 낮은 매매가를 기준으로 LTV 범위 내에서 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KB시세를 원칙으로 하되, KB시세 대비 매매가가 낮으면 영업점의 재량에 따라 매매가로 대출액을 산정할 수 있다. 영업점마다 대출액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KB시세(8억6500만원)보다 낮은 7억9000만원에 서울 아파트를 계약한 예비 차주라면 은행마다 적격대출 가능액이 3000만원 정도 차이 나게 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급매라고 했을 때도 KB시세보다는 높은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매매가를 기준으로 대출액이 정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다만 반대일 때는 보수적인 심사를 위해 더 낮은 금액을 바탕으로 대출액을 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은행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가계대출 증가세에 따라 은행의 대출 태도가 보수적으로 바뀐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다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가 더해지면서 은행들은 더욱 대출을 까다롭게 취급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얘기다.

일각에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대출 기준에 실수요자들의 혼선만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은행들에 적격대출 한도를 배분하는 주택금융공사 역시 대출 실행 기준을 은행의 판단에 맡기고 있는 터라 수요자는 직접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적격대출이 정책금융상품이어도 주금공은 은행 판단에 실행 기준 등을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면서 "적격대출은 영업점의 한도가 얼마나 남았는지, 대출액 산정 기준 등 내용을 영업점에서만 공개하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자금조달 계획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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