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외교는 주고받는 것인데
[홍승희 칼럼] 외교는 주고받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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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두고 국내 언론 보도는 핵심 빠진 지엽말단적인 소식 물어 나르기에만 몰두한 게 아닌가 싶은 인상을 준다. 양국 대통령 간에 단독회담도 없이 환담으로 끝난 사안을 두고도 포장하기에 급급한 모습이 꽤 궁색해 보였다.

취임한지 며칠 안 된 새 정부의 준비부족까지는 그렇다 해도 방한하자마자 삼성반도체 공장부터 직행하는 바이든의 노골적인 행보는 사실 꽤나 불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를 문제로 지적하기보다는 미국의 입장,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의 입장을 무조건 이해하고 옹호하려는 태도는 조선시대 명, 청의 사신 방문을 대하는 조선왕실의 비굴한 사대외교와 뭐가 다른가 싶다.

미국이 그토록 자신들의 필요에 급급한 것은 그들 입장이라 치더라도 그럼 우리는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얻었는가. 경제문제는 미국의 요구대로 다 퍼주더라도 안보만 챙기면 된다는 것이 현 정부의 입장이라는 것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안보에서는 과연 실익을 챙겼는가. 불행하게도 공동성명에서 드러난 내용은 미국의 전략에 말려들며 한국의 안보가 더 위태로워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위협이 되는 주변국은 북한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도 일본도 한국이 이룬 경제적 성과에도 경계심을 보이지만 성장하는 한국의 국방력도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다.

일본이야 미국과의 관계도 있고 그 미국의 대 중국 전략에 껴묻힌 센카쿠열도 문제도 있어서 당분간 큰 전쟁으로까지 번질 일은 없겠지만 일본 내부 사정의 변화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국지전 도발을 할 수 있는 독도라는 밑밥을 깔아둔 상태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이 미국 동아시아 전략에 한 걸음만 더 깊이 들어가도 언제든지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을 미국 중심 진영의 약한 고리로 보고 기습전을 펼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중국 역시 무슨 협박을 하든 경제적으로 얽힌 것이 많아 부분적인 경제보복 이상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이 앞으로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급작스럽게 돌변할 수도 있는 불확정적인 관계다. 중국이 몇 십 년 동안 여유롭게 놔두었던 대만과의 관계를 새삼스럽게 군사적 위협으로 발전시킨 시기를 보면 미국이 중심이 돼서 중국 IT산업 성장을 억제하고자 나선 이후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반도체는 지난 시절의 석유만큼이나 미래의 산업에 필수적인 자원이 됐다. 그 반도체 수급의 길을 미국이 틀어막고 나설 기미가 보이면서 아직 자국내 생산 능력이 부족한 중국이 TSMC가 있는 대만의 흡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고 판단된다.

그렇기에 미국은 더욱 중국의 대만 침공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국내외 여건은 대만에 전력을 쏟아 부을 처지도 아니고 또 근래 미국의 세계전략도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수정된 것이 명확해 보인다.

그래서 반도체는 자국으로 당기면서 이런저런 구실로 무기개발을 가로막아왔던 한국에 대해서는 미사일 규제 등은 풀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의 세계전략에 동참하라고 여러 각도에서 압박을 가해온다.

일본 내에서는 여전히 평화헌법 개정문제로 논란이 있다지만 미국이 원해서 만든 평화헌법을 개정해서라도 일본이 군사력을 더 키우도록 유도하고 있다. 미국이 질 짐을 덜자는 목적을 넘어서 미국이 나서기 전에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최전선에 서주길 바라는 것이다.

지난 5년간 한국은 북한이든 중국이든 혹은 러시아든 주변국들에게 전쟁 책동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또 그만한 성과도 올렸다. 그러면서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실익을 확실히 챙겼다. 그야말로 칼날 위를 걷는 대외 정세 속에서 균형을 잘 잡으며 국제사회 속에서 한국의 영향력도 확장시켰다.

작지만 강한 나라, 그것이 현재 한국이 목표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렇기에 우리 성장에 걸맞는 외교적 지위를 획득해야 하고 타국과의 관계에서 당당하되 오만하지는 않은 외교를 펴나가야 한다.

아직도 여기저기 굴신해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한국의 외교를 망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고개를 치켜들어야 할 때를 놓치면 제밥그룻도 챙길 수 없는 게 국제관계다. 한 나라가 성장을 보이기 시작하면 주변에서는 제대로 성장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에 그 ‘때’가 중요하다. 일본의 한국을 향한 반도체 침공이 바로 그 ‘때’에 일어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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