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물가상승과 임금인상
[홍승희 칼럼] 물가상승과 임금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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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상승이 심각하니 임금인상을 자제해 달라. 이 정부의 첫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업인들을 앞에 두고 한 말이다.

그 타깃이 된 기업들은 지난해 높은 수익을 낸 포털기업들이라고 한다. 수익을 많이 내도 임금인상은 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만한 수익을 내기 위해 해당 기업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스스로를 갈아넣어야 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물가상승에 임금인상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밸류체인의 붕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원자재가격 폭등 등으로 전 세계 정부가 모두 물가급등으로 허둥대고 있다.

평상시에도 임금인상은 물가상승에 뒤따르는 현상이다. 그런데 물가가 오르니 임금인상을 억제하자는 것은 부의 편중을 더 심화시키겠다는 심보에 다름없다.

임금이 올라서 물가가 오른다는 경제학자들도 있긴 하지만 유독 한국의 경제 관료들은 늘 책임을 임금에, 나아가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습성이 강하다. 아마도 이것 역시 일본경제에서 학습한 효과가 아닌가 싶다.

이런 습성이 최근 전 국민을 기쁘게 했던 누리호 발사 성공의 주역들에게마저 낮은 대우를 강요하는 결과를 낳았음직하다. 모든 미디어가 떠들썩하게 누리호 발사의 성과를 치켜세우는 이면에서 발사 주체인 한국우주항공산업의 한 박사급 연구원이 관련 노동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하소연한 글이 올라와 관심을 끌었다.

기술직 노동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스스로를 갈아 넣는 고생 끝에 국가적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지만 그에 따른 성과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는 현실을 털어놓은 얘기다. 출장을 가도 KTX를 타면 안되고 호텔에 묵어도 안 되는 현실 얘기다.

민간기업에 가면 그보다는 훨씬 나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던데 그 민간기업에게도 임금인상 억제 요구부터 하는 정부다. 이런 상황에서 전직을 하면 산업스파이 운운하며 법적으로 옭아매려 들건 거의 확실하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경쟁국가, 경쟁기업으로 전직하는 기술직들을 매도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과연 열정페이급의 대우만 하고 그런 비난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노력에 대한, 성과에 대한 제대로 된 대접을 충분히 한 이후에라야 그런 비난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임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다. 노동의 강도가 높고 또 질 높은 노동을 제공받아 성과를 올렸으면 마땅히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게 옳은 것이다.

지금의 물가상승 압박은 원자재 수급 안정을 위한 통상외교 분야의 더 많은 노력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할 일이지 임금을 억제하는 것으로 해결해보려는 태도는 매우 안일한 발상이다. 지금처럼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는 오히려 수출단가를 올리기도 쉽고 그만큼 기업수익을 늘리기에도 수월하다.

물론 물가상승률이나 경제성장률에 비해 과도한 임금인상은 부담이 된다. 이것은 회사 사정 제대로 아는 기업 내에서 노사가 서로 조정하고 합의할 일이지 정부까지 나서서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임금인상마저 억제되면 결국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화할 위험성만 더 커진다. 지난 30년간 임금인상 억제를 지속해온 일본 경제가 지금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고 점검해보길 정부 당국에 권한다.

역대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관료들은 물가가 올라도 임금 탓, 일자리가 줄어도 임금 탓을 습관처럼 한다. 임금은 기업과 노동자의 수요 공급이 맞아떨어지는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갑이 갑질을 하지 못하도록 조정하는 일이어야지 정부가 나서서 갑질할 일은 결단코 아니다.

기업이 고임금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그 기업의 수익성이 낮다는 뜻이고 이는 그 기업의 사업내용이 시대적 요구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한계기업까지 존속시키기 위해 정부 지원금을 쏟아 부어 국가경제가 망하는 사례도 이미 이웃나라에서 보여주고 있다. 타산지석을 삼을 대상을 롤모델 삼으려는 어리석음을 걱정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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