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갈 길 먼 금리인하요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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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금리인하요구권 제도 운영을 지속적으로 활성화해달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금융업계에 주문한 특명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대출 금리가 치솟은 만큼, 금리인하요구권 제도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금융권이 나서달라는 얘기다.

가계대출 금리가 8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이자 부담에 대한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금융 당국은 결국 구두 개입에 나섰다. '금리인하요구권 활성화'도 대출금리 인하 압박을 위해 당국이 내놓은 카드 중 하나다.

금감원장이 연일 강조하고 있는 금리인하요구권은 말 그대로 금융소비자가 금리를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권리다. 신용등급이 상승했거나, 자산 또는 연소득이 늘었다면 은행에 대출 금리를 낮춰달라고 직접 요청할 수 있다.

2002년부터 은행 약관에 근거가 마련됐으니 금리인하요구권은 꽤 역사가 깊은 제도다. 지난 2019년 6월 법제화가 이뤄진 후에는 제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금리인하요구권을 쓰는 차주들도 점점 늘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에 접수된 금리인하요구권 신청 건수만 2020년 5만6551건에서 2021년 17만6989건으로 1년 새 3배가량 증가했을 정도다. 금리 인상 흐름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금융소비자가 솔깃할 만한 제도인 만큼, 최근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너도나도 일단 신청하고 보는 모양새다. 

문제는 제도에 대한 인식만 높아졌을 뿐, 인하요구권을 통해 혜택을 본 사람은 여전히 많지 않다는 점이다. 수용률 자체도 지난해 말 기준 39.3%에 불과하다. 10명 중 4명조차도 금리인하 혜택을 못 받는다는 의미다.

분모인 신청 건수 급증에 따라 수용률이 낮아진 영향도 있다지만, 은행별 기준이 제각각인 데다 은행들이 심사기준을 불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는 터라 불만은 점점 커지고 있다.

실제 승진, 연소득 증가로 개인신용정보회사(CB)사의 점수가 오른 이가 금리인하요구권을 신청해도 은행에서 퇴짜를 맞는 경우가 대다수다. 은행 신용등급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신용등급이 오르는지는 알기 어렵다. 

기준도 모르는데 금리인하요구권을 적극 활용하라니.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나 흘렀음에도 체감도가 나아졌다는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국은 어떤 은행이 금리인하요구권을 잘 받아주는지 비교할 수 있도록 해 제도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당장 오는 8월부터 반기마다 금리인하요구권 운영실적이 공시될 예정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제도개선이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키를 쥐고 있는 은행들은 되레 공시를 의무화한다고 해서 승인율을 억지로 높이긴 힘들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더구나 제도 자체가 신용등급에 따라 대출금리가 결정되는 상품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주들의 금리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금리인하요구권을 두고 '유명무실' 제도라고 손가락질한다. 제도가 이름만 그럴듯하고 실속이 없다는 오명을 벗으려면, 무엇보다 취약차주들의 이자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선 실효성 있는 활성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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