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되살아나는 외환위기 망령
[홍승희 칼럼] 되살아나는 외환위기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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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외환보유고가 충분하다며 해외발로 혹은 국내 일각에서도 나오는 외환위기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정부는 막판까지 위험성을 부인하며 시장이 위기를 부추긴다는 식으로 비난했었다.

과거 외환위기는 아시아발 위기에 직격당한 것이어서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문제였다고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에 이은 패권전쟁의 시작이 불러온 세계경제의 침체에 원인이 있는 것이어서 과거에 비해 그 파장은 훨씬 크고 길게 이어질 위험이 높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의 수출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원유 가격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높아진 수입액에 비해 수출이 둔화됨으로써 무역수지는 더 큰 폭으로 악화되고 있다.

최근 블름버그 통신이 예상한 파산 위험국가 50에 한국이 포함되면서 한국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여러 지표들을 대입한 계산의 결과 지난해 선진국에 진입하고 외평채 발행금리가 일본보다 낮아졌던 한국 경제가 불과 1년 만에 외평채 금리마저 팬데믹 시작 전후보다 더 높아지는 참담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선제적이 금리인상을 단행하며 미국 금리인상에 대비하던 한국이 올해 들어서는 미국의 가파른 금리상승에 뒤따라가기 급급할 뿐만 아니라 이달 중 미국 금리의 추가인상이 예상대로 이루어질 경우 금리역전마저 예상되고 있다. 이미 외화자금들은 그런 한국경제의 더딘 대응에 6월 중에만 20% 가량 빠져나간 상황에서 금리 역전이 일어날 경우 가속이 붙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런 판국에 정부는 외환거래 완화책을 만지작거리며 외화 해외반출 길을 넓히려고 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앞두고 외환거래를 완화했던 1997년의 데자뷰를 보는 느낌이다.

정부가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장담하면서도 한미통화스왑에 목을 매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걱정을 키운다. 통화스왑을 회피하면서 외국과의 통화거래 방식을 FIMA(Foreign and Infomation Monetary Authority Repo Facility) 방식으로 전환, 미국 국채시장을 안정화시키려는 미국에 통화스왑으로 매달릴 경우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할 것인지 생각해보면 끔찍하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300억 달러로 현재의 위기가 단기간에 끝난다면 정부 장담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새로운 진영간 전쟁의 신호탄에 불과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만큼 무역거래가 계속 위축될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현재의 외환보유고는 쉽사리 고갈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구상하는 패권전쟁이 미국의 의도대로 흘러갈 가능성은 낮고 유럽은 유럽대로 아시아는 아시아대로 저마다의 국익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협력과 거부를 끊임없이 선택할 조짐을 이미 보이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까지는 매우 조심스럽게 경제와 안보관계를 분리하며 국익 우선의 선택을 해왔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 경제를 안보에 종속시키며 일방적인 미국 편들기로 돌아서고 있다. 그 까닭으로 미국보다 비중이 높았던 대중국 무역이 박살났고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터전을 망가트리고 있다. 가장 큰 무역흑자 대상이었던 중국과 미래의 핵심 경제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는 위험한 선택을 함으로써 무역수지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는 곧 환율상승으로 이어지고 경기는 추락의 경로를 밟을 수밖에 없다. 아직 일본을 넘어서지 못한 한국 경제는 지금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그 악몽과 같은 길을 걸으려 하고 있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 초강대국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과거처럼 유일한 강대국은 아니다. 미국 혼자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로 싸워 이기기 힘들다. 그런데 그 싸움을 지금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에서 벌이려 하는 데 한국이 그 싸움에 앞장서겠다고 공언하며 현재의 가장 큰 시장과 미래의 경제 파트너를 모두 적으로 돌리고 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마치 친명사대를 부르짖다가 신흥 강국 청나라에 국토를 유린 당하고 숱한 백성이 죽어나간 끝에 왕이 침략군 장수 앞에서 삼고구례를 행했던 시절로 과거 회귀한 것만 같은 처지가 됐다. 국가 주권의 개념을 다시 읊어야 하나 싶어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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