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재계, '3高 위기'에 숨고르기···부각되는 '총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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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 우려에 비상경영 돌입···SK하이닉스 등 투자 계획 재점검
대기업 총수들 여름휴가 반납하고 '하반기 경영 전략' 부심할 듯
(사진=서울파이낸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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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경기침체 우려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비상경영에 돌입한 기업들은 기존의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는 등 긴축모드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 복합경제위기가 지속되면 국내 기업들의 투자계획 및 고용 축소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기업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총수 리더십'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총수들은 여름 휴가도 반납하고 현안 대응과 전략 점검에 나설 전망이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대내외 여건이 악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은 올 하반기 투자를 확대하기 보다는 속도 조절하는 등 ‘숨고르기’에 나섰다. 최근 SK하이닉스는 이사회를 열고 충북 청주공장 증설 안건을 의결하려고 했으나 논의 끝에 결국 최종 결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이사회에서 증설이 과연 필요한지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당초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비해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내 43만3000여㎡ 부지에 약 4조3000억원을 투자해 신규 반도체 공장(M17)을 증설할 계획이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내년 초 착공해 2025년 완공돼야 하지만 이사회의 보류 결정에 따라 착공은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세계 경기가 빠르게 얼어붙으면서 반도체 업황 전망이 불투명해진 것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하락세에 진입한 글로벌 D램 업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인플레이션, 중국 경기둔화 등에 따른 IT 수요 둔화로 한동안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기에 원화 약세로 원자잿값 등 수입 물가도 가파르게 오르는 데다 투자 비용도 구상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있는 상황이다.

특히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경제 불확실성이 심화한 데 따라 투자 지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의 연장선상으로도 해석된다. 그는 지난 14일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작년에 세웠던 투자 계획들이 어느 정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며 "원재료 부분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원래 투자대로 하기에는 계획이 잘 안 맞는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오는 2026년까지 247조원의 투자를 예고한 SK그룹 경영에 대해서 "안 할 계획은 없다"면서도 "이자가 계속 올라가는 만큼 전략·전술적 형태로 투자를 지연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미국 애리조나에 1조7000억원을 들여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한 투자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29일 투자계획 재검토에 대한 조회공시에서 "내용이 확정되면 1개월 이내 재공시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고환율과 인플레이션으로 투자비가 급증했고 경기침체 우려로 배터리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 재검토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또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총 1000조원이 넘는 중장기 투자계획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 계획을 재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기업은 당초 투자계획대로 진행하겠는 입장이지만 고물가·고환율 등에 따라 손익계산서를 다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말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100개사 응답)을 대상으로 실시한 하반기 국내 투자 계획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28%는 "상반기 대비 투자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답했다. 하반기 투자 규모를 늘릴 것이라 답한 기업은 16%에 불과했다. 상반기와 비슷한 규모로 하반기에 투자할 것이라는 기업은 56%였다. 투자활동이 활성화되는 시점에 대해서는 대기업 58%는 '내년'을 꼽았다. 올해 하반기로 답변한 기업 비중은 13.0%에 불과했고 '2024년 이후' 및 '기약 없음'을 선택한 기업은 각각 7%, 10%로 나타났다.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중장기 비전과 사업 방향성을 제시할 총수 리더십이 어느때보다 부각되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은 여름 휴가 기간에도 국내외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경영 현안 챙기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은 여름 휴가 시즌에도 하반기 위기 극복을 위한 경영 전략을 짜느라 국내외에서 시간을 보낼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최근 유럽 출장에 이어 다시 한번 해외 출장길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오는 22일 열리는 '계열사 부당합병' 공판에 출석한 뒤 다음달 11일까지는 법정 일정이 없어 약 19일가량 여유가 생겼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말 재판부 사정으로 다음 공판 기일까지 9일 간의 공백을 이용해 아랍에미리트(UAE)로 중동 출장을 다녀온 바 있다. 지난달에도 재판부의 허락을 득해 네덜란드 등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재계에서는 약 22조원 규모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제2공장 착공식에 참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아베 총리 사망을 기점으로 관계 회복에 나선 일본에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

최태원 회장은 오는 2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6·25전쟁 참전용사를 기리는 '추모의 벽'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오른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 SK 계열사의 현지 투자 상황에 대한 재점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미국 출장 이후 8월 예정된 SK그룹의 '2022 이천포럼'에서 하반기 경영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이달 중 글로벌 권역본부장 회의를 주재, 하반기 경영 전략을 점검한다. 이후 개인적으로 여름휴가를 활용해 하반기 판매 확대 전략과 미래 모빌리티 사업 구상 등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올 연말부터 미 앨라배마 공장에서 GV70 전동화 모델 생산이 시작되고 새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6도 유럽을 시작으로 해외 판매가 본격화되는 만큼 정 회장도 해외 출장길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구체적인 휴가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예년과 비슷하게 이달 말쯤 여름휴가를 짧게 다녀온 뒤 경영 현안 챙기기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말부터 한 달여 동안 각 계열사별 전략보고회를 마친 그는 취임 5년 차를 맞는 내년을 대비해 중장기 비전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폐플라스틱·폐배터리 활용 등 친환경 클린 테크를 새 먹거리로 낙점한 구 회장은 미래 사업의 연구개발(R&D) 투자는 물론 경쟁력 강화, 인재 육성 등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집중할 것이라는 게 재계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계속되는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에 따라 기업들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해 하반기 위기 극복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며 "재계 총수들 역시 여름휴가 기간을 활용해 경영 현안을 재점검하고 중장기 전략과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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