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종의 세상보기] 부활한 세실극장
[김무종의 세상보기] 부활한 세실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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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극장이 부활했다. 경영 어려움을 겪어 폐관 위기에 처했다 국립정동극장에서 운영을 맡아 명맥을 잇게 됐다.

1976년 4월 19일 문을 연 세실극장은 1970~1980년대 소극장 중심의 연극 문화를 주도한 곳이다. 서울연극제의 전신인 대한민국연극제를 1회부터 5회까지 연 곳이기도 하다. 2013년에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연극 무대가 대학로로 옮겨가면서 운영난을 겪었다. 코로나19까지 겹치고 지난해 말 서울연극협회의 위탁 운영이 종료되면서 폐관 수순을 밟는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국립정동극장이 운영을 맡으면서 기사회생하게 됐다.

세실극장은 과거에도 여러 번 폐관 위기에 처했다 되살아난 전력이 있다. 1999년 4월에는 제일화재로부터 연 1억2000만원의 임대료 지원을 받아 극장 이름을 ‘제일화재 세실극장’으로 바꾼 적도 있다. 국내 첫 ‘네이밍 스폰서’ 사례다.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있는 고풍스런 곳에 자리한 세실극장은 서울 시내의 문화예술을 이끄는 중추였다. 지금은 대학로가 연극의 중심지로 부상했지만 옛 자리를 그대로 지키며 이제 국립정동극장_세실로 개명해 앞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재개관의 첫 연극 무대는 카사노바였다. 익히 알던 그 바람둥이의 대명사 ‘카사노바’. 재개관에 초대를 받아 본 이 연극은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실험적 무대였다. 수많은 연극들이 관객과의 소통을 강조하는데 카사노바는 어떻게 구현했을까 싶어 관심을 두고 봤다.

카사노바는 영국의 대표 극작가로 꼽히는 데이비드 그레이그의 작품으로, 국내 초연이다. 희대의 여성편력가로 알려진 실존 인물 카사노바(지현준 분)의 인생을 다룬다. 또 다른 주인공 캐비넷 메이커(정승길 분)는 카사노바 때문에 아내와 이별했다고 믿고 복수에 나선다. 지난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로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은 임지민이 연출을 맡았다. 지난 24일 막을 내렸다.

배우들의 연기는 흡족했다. 노련미가 묻어나고 잘 연마된 모습이었다. 카사노바 역을 맡은 지현준의 연기는 그가 평소 배운 바이올린 연주와 불어를 연극에 녹아내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해외 무대에 설 그날을 위해 준비했다 하니 그의 노력과 준비성이 대단하다.

무대 구현은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관객이 자리잡은 곳곳에 분산 배치했다. 관객 좌석도 고정관념을 깨고 무대가 있을 만한 자리에도 위치한다. 무대와 관객이 공간 속에 어우러지게 한 것이다. 

무대와 관객간 거리를 좁히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실험 정신 가득한 연출자는 이를 과감하게 시도했다.

이날 국립정동극장 대표는 개관식에 참석한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면서 “극장의 주인이신”이란 표현을 쓰자, 1차관은 “주인이란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언급하면서 개관식을 축하했다. 대표는 “누구나 주인이란 표현”임을 재차 설명해 해명하면서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과거 문화예술계에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바 있어 과거의 아픈 기억을 상기시켰다.

세실극장 재개관의 초연작 연극 카사노바가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시 했듯이 세실극장이 간판을 국립정동극장_세실로 새롭게 바꿔 단 만큼 앞으로 소통은 더 중요하다 하겠다. 이젠 운영 주체가 당국에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의 자율성과 창의성 고취를 위해 정부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철학과 실행이 필요하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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