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약방문···이상 외환거래 방지책 내놓은 은행권, 실효성은?
사후약방문···이상 외환거래 방지책 내놓은 은행권, 실효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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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1년 전 경고에도 7조 이상 거래 발생" 비판
외환거래 모니터링팀 신설···프로세스 강화에 초점
실사 등 은행 법적 권한 없어···법 개정 필요성 지적
서울 한 은행 영업점 모습 (사진=박시형 기자)
서울 한 은행 영업점에서 고객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가상자산 관련 이상 외환거래가 전 은행권으로 확산된 데 대해 금융당국이 고강도 검사를 예고하면서 은행들도 자체 해외송금 프로세스를 강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다만, 법 개정 없이 은행 자체 프로세스 만으로는 이상 외환거래를 완벽히 방지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이상 외환거래 사태의 문제가 해외송금 자체보단 가상자산 등 의심스러운 자금출처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해외에 송금하려는 자금의 출처를 은행이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편 금감원이 1년여 전부터 ‘이상 외환거래’에 대해 경고한 것으로 드러나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자체 조사를 통해 나온 이상 외환거래 의심건을 지난달 29일까지 금융감독원에 보고하고 금감원 검사와 상관없이 이상 외환거래를 사전에 막을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초부터 올해 6월 초까지 5개 지점에서 총 1조6000억원 규모의 이상 외환송금이 발생한 우리은행의 경우 외환사업부 내 외환규정관리팀을 신설하고, 외환업무센터에 외환모니터링팀을 새로 만들었다. 우리은행은 이같은 내용의 조직개편을 지난달 초 단행했는데, 외국환거래법 관리 및 전문상담 역량을 강화하고 이상거래를 조기 발견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2조5000억원 규모의 이상 외환송금이 발생한 신한은행도 금감원 조사 진행상황과 결과를 예의주시하면서 송금 관련 통제 프로세스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현재까지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신한은행에서는 지난해 2월 중순부터 올해 7월 초까지 11개 지점에서 1238회에 걸쳐 총 2조5000억원 규모의 이상 외화송금이 취급됐다.

금감원 조사가 진행 중인 우리·신한은행 외 다른 은행들도 내부 프로세스 강화에 나서고 있다. KB국민은행은 해외 송금을 처리할 때 자금출처 등에 대한 정보를 추가 요청하고, 자금세탁 방지 등을 위해 유관부서와 협의하도록 주의환기 조치를 시행했다.

하나은행은 이달 중 해외 송금건이 적정한지 등을 점검하는 팀을 본점에 구성할 계획이다. 또 이상 외환거래 선별기준을 내부적으로 마련하고 외국환거래 업무 전반을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는 '체크박스'를 전산시스템에 도입할 예정이다.

해외송금 절차를 한층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이지만 실효성에 대해선 의구심이 제기된다. 조치를 한층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은행이 현장 실사 등을 통해 해당 송금건이 정상적인 거래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환거래법 규정에 따라 해외송금에 필요한 서류가 모두 구비됐다면 실제 이상거래였다 하더라도 이를 은행이 사전에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송금 과정 자체에 문제가 없다면 해외로 빠져나간 자금의 출처가 의심스럽다고 하더라도 이를 은행이 사전에 파악할 뚜렷한 방법이 없다는 것도 한계로 꼽힌다. 이에 은행권과 해외송금 서비스 이용 법인의 자금출처 증명·확인의무가 강화되는 방식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해외에 송금하려는 국내 법인에 대해 은행들이 강력하게 확인 절차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돈을 받는 해외 법인까지는 관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 가상화폐 환치기 등 불분명한 자금 출처인데, 은행이 고객에게 자금 출처를 다 규명하라고 자료를 요청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는 "해외 송금하려면 자금출처를 투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전부 구비한 업체에 한해 송금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이상 거래를 100% 걸러내긴 힘들 것"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수출 의존도가 높아 무역금융을 이용하는 기업이 많은데, 법적으로 해외송금 절차가 까다로워지면 이들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는 점이 정부와 은행권의 고민"이라고 했다.

한편, 금감원의 이상 외환거래에 대한 예방 주문에도 결국 7조원대 이상 거래가 발생하며 은행권의 대책 마련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가상자산의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해외 송금거래가 늘자 지난해 4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외환 담당 부서장과 화상회의를 열고 주의를 당부했다. 

금감원은 당시 하나은행에서 3000억원이 넘는 금액이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로 흘러간 것을 파악하고 외환거래법상 확인 의무나 자금세탁방지법상 고객 확인제도, 가상자산거래소가 거래금을 안전하게 관리하는지를 확인하는 강화된 고객 확인(EDD) 제도 등을 준수해달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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