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환율·물가에 한국경제 식어간다···경기침체 터널 '코앞'
高환율·물가에 한국경제 식어간다···경기침체 터널 '코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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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원·달러 환율, 1384.2원···13년 5개월 만에 최고
올해 물가상승률 연간 5%대 전망···외환위기 수준
8월 무역수지 -94.7억달러···통계작성 이래 최대폭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전경. (사진= 연합뉴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전경. (사진= 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380원을 뚫어내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 만큼 올라섰다. 이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외환위기 때로 돌아갔고, 무역수지는 과거 1956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수출 경기를 지탱하는 반도체 경기마저 하강 국면에 진입한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정부는 견조한 대외건전성 지표 등을 고려할 때 우리 경제는 아직 흔들릴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대외 매크로(거시 경제) 악재들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으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 6%·1380원 찍은 高물가·환율···국가적 위기 수준

최근 원·달러 환율의 급등세는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는 주된 요인이다.  환율은 지난달 초 1200원대 후반에도 머물렀으나, 이달 7일에는 1384.2원까지 치솟았다. 이달 첫 5거래일에만 무려 46.6원이 뛰었다. 7일 종가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2009년3월30일(1391.5원) 이후 1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통상 일일 변동폭도 5원 내외로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달 변동폭은 9.32원으로 두 배 가량 높다.

더욱이 '킹달러'를 반전시킬 재료가 부재한 상황에서 시장은 환율 최대 상단을 달러당 1400원까지도 열어두고 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대내 펀더멘털에 대한 의문으로 기울기가 가팔라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전환점이 될 만한 변수도 많지 않아 1400원 내외를 상단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고환율은 주춤했던 물가 오름세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7%를 기록해 2개월째 이어진 6%대 오름세를 끊었다. 하지만 이미 연간 5%대가 넘는 물가 오름세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을 넘어, 24년 전인 외환위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더욱이 높은 환율은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상품이나 원자재의 단가를 높이고, 이는 곧 높은 물가상승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우리나라 수출 경쟁국인 중국이나 일본 역시 자국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원화 약세가 수출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옛 이야기가 됐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소비자물가가 당분간 5~6%대의 높은 오름세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의 충돌이 더욱 악화되고 있고, 최근에는 석유수출기구(OPEC) 협의체인 'OPEC+'에서 감산합의까지 더해졌다. 여기에 수요측 상승압력까지 맞물리면서 인플레이션이 누그러지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 한국 경기 버팀목 '수출·반도체' 하강 국면 진입

여기에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 경기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설상가상 반도체 경기도 하강 국면에 진입하고 있어 한국 경제의 둔화 신호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실제 지난달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94억7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과거 1956년 통계 작성 이래 사상 최대 적자다. 종전 최대치인 올해 1월(-49억500만달러)과 비교해도 두 배가량 높다. 7월 상품수지(-11억8000만달러)도 10여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고, 경상흑자(10억9000만달러)는 1년 만에 7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내달에는 경상적자 가능성까지도 우려된다. 앞서 정부는 무역적자가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무역수지는 왜곡된 개념", "상품수지는 양호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달 역대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한 만큼, 한은은 경상수지도 적자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향후 경기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7일 경제동향 보고서를 통해 "한국 경제의 회복세가 약화되고 있고, 경기하방압력은 더욱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먼저 수출 증가세가 크게 둔화됐다. 역대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했던 지난달 수출은 조업일수가 늘었지만, 전월(9.2%)보다 낮은 증가율(6.6%)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달 일평균 수출액은 전월 13.9%에서 2.2%로 크게 감소했는데, 이는 코로나19 봉쇄령 등으로 대(對)중국 수출이 쪼그라든 탓이다. 중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확대된 탓에 여건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수출 경기의 핵심인 반도체 경기도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는 관측이다. KDI에 따르면 지난 7월 반도체 생산(계절조정 기준)은 전월 대비 3.4% 감소했다. 같은 달 반도체 산업가동률은 지난 4월 고점(139.4)대비 14.3% 내렸고, 재고율은 전월(63.0%) 대비 95.7%로 급등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반도체 전문가 30인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6.7%는 현 반도체 산업 상황을 '위기' 단계로 진단했다.

(사진= 플리커)
(사진= 플리커)

◇ 전문가·학계 "韓, 침체 국면 진입 중···긴축 재정 의문"

경제계에서는 이미 우리나라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진행되고 있거나, 침체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소비, 생산, 수출 등 국내 경제를 구성하는 모든 경제지표 부문에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한·미 금리 역전으로 우리나라의 원화가치가 크게 하락하는 가운데 장기적인 한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는 국내외 금융시장에서도 반영되고 있으며, 현재 한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해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어 "물가 불안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큰 만큼,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빠르게 물가 상황을 안정시키는 것"이라면서 "한미 간 금리 역전 현상도 정책 당국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평가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 경제가 집중하고 유의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또한 큰 틀에서 긴축 재정으로 돌아선 정부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온다. 새정부의 첫 예산안인 '2023년 예산안'은 지난 2007년 이후 가장 낮은 총지출 증가율로 편성됐는데, 내년 경기 둔화 우려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는 평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세계 경제가 점점 침체 국면으로 돌아서고 있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 흐름도 내년 더욱 악화될 것"이라면서 "재정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내년 경기가 더욱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예산안을 긴축으로 편성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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