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규제혁신? 남 얘기!···'저축은행 사태' 이후 손발 묶여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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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분리 등 당국 규제 완화 기조, 일선 체감하기 어렵다"
"'빅블러' 대응보단 올해 실적부터···차등 규제 해소 필요해"
한 저축은행 영업점 모습. (사진=서울파이낸스DB)
한 저축은행 영업점 모습. (사진= 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당국이 금산분리·전업주의 규제완화 등 금융산업 전반의 낡은 규제를 대대적으로 손질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저축은행 입장에선 언감생심이다.

대출총량규제 지속·대손충당금 적립 등 리스크 관리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진 데 반해, 업계의 오랜 숙원 사업들은 지난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이후 10년째 진척없는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어서다.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지만, 저축은행 업계는 사실상 손발이 묶인 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올해 당국 기조는 큰 맥락으로 볼 때 규제 완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당국은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는 '빅블러' 시대 속 금융·산업자본을 분리하는 '금산분리법'을 낡은 규제로 정의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까다롭고 제한적인 업무 규제를 대폭 수정해 금융권의 신사업 진출도 적극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업무 영역을 넓히며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 도약을 꿈꾸는 시중은행들과 달리, 저축은행들은 규제 완화 기조를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큰 맥락으로 보면 금산분리 규제 완화 시 저축은행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해묵은 규제들은 물론, 강화된 대출총량규제 등이 (저축은행의) 앞길을 막고 있다. 더욱 유연한 규제가 적용된다고 하지만, 내부적으로 이를 검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저축은행 업계가 규제완화 분위기 속에서도 웃지 못하는 이유는 '저축은행 사태' 이후 강화된 규제가 풀리지 않은 이상 금산분리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조치가 무의미해서다. 당시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등 리스크가 큰 사업들에 대해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무분별한 대출을 자행했고, 이런 부실채권들을 다시 저축은행이 떠안으면서 대규모 부실 사태가 벌어졌다.

저축은행 업계는 이후 건전성 강화 노력을 지속했지만, 10여년 전 발생한 '원죄'로 지금까지도 강력한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저축은행 업계의 숙원사업으로 꼽히는 △예금보험료율 △영업구역 △인수합병(M&A) 등의 규제를 풀어내기 위해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렸으나,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보료가 대표적이다. 예보료율은 예금보험공사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금융사로부터 걷는 법정부담금이다. 현재 저축은행 예보료율은 0.4%로 시중은행(0.08%)의 5배다. 보험(0.15%)·상호금융(0.12~0.13%)과 비교해도 간극이 크다.

저축은행 업계는 건전성 관리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온 만큼, 이제는 차별적인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정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도 12.88%로 집계되는 등 당국 지도 기준(7~8%)보다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보료율 인하'를 둘러싼 시각차는 여전하다. 예보는 현재 예보 기금의 절반 가까운 금액이 저축은행의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특별계정으로 적립되고 있고, 지금까지도 마이너스(-)라고 설명한다. 예금자 보호 한도 기준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예보료율 개선의 큰 걸림돌이다.

영업구역 제한도 애로사항이다. 각 회사별로 속한 영업구역 내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 대출을 시행해야 하는 규제인데, 비수도권의 경우에도 40% 이상을 해당지역 영업권역 내에서 대출을 내줘야 한다.

가뜩이나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지역경제가 쪼그라든데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금융이 빠르게 확산된 상황을 감안할 때 지역권역 중심의 규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아울러 영업구역 제한이 저축은행 간 합병을 제한하고, 동일 대주주가 3개 이상의 저축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규제도 업계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막는 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올해 대출총량규제를 조정(지난해 21.1%→올해 10.8~14.8%)하면서 저축은행의 고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저축은행은 수신상품을 통해 대출 등을 위한 조달비용을 감당하고 있는데, 금리상승기와 맞물려 조달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대출총량규제 강화 탓에 대출 성장은 막히는 이중고를 겪고 있어서다. 이는 올해 상반기 실적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국내 79개 저축은행은 올해 상반기 기준 899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전년(1조1000억원) 동기 대비 15.1%(1601억원) 감소했다. 상반기 영업익 기준으로 저축은행 업계가 역성장한 것은 지난 2013년 이후 9년 만이다. 이자손익(4810억원) 증가에도 대손충당금(4910억원) 부담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저축은행은 시중은행과의 수신경쟁, 인터넷전문은행과의 여신경쟁이 쉽지 않은 데다, 당국의 눈치까지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라 새출발기금과 안심전환대출 등의 취약계층 지원책도 부담이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고객이 저축은행의 주요 고객이기 때문에 원금 감면·금리 조정 등도 실적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현재 업계가 느끼기에는 당국의 규제 기조가 되레 더욱 강해진 것 같다"며 "당국 입장에서는 과거 저축은행 사태도 있었기 때문에 저축은행들이 대형화하고, 다양한 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다른 것을 생각하기 벅찬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올해 장사부터 걱정해야 하는 저축은행 업계에선 금산분리는 사실상 먼 나라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사업진출은 사실상 언감생심이고, 빅테크·핀테크의 플랫폼 종속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중소 저축은행 관계자는 "이미 시장 내 운동장은 기울었고, (플랫폼에) 종속될까 걱정된다"면서 "이미 경쟁이 심화하면서 일부 저축은행들은 여신 축소 규모를 실감하고 있다. 지금은 플랫폼 역할만 하고 있는 곳들이 추후 영업까지 개시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이어 "차라리 그들끼리의 경쟁이 과당 경쟁으로 이어져 어느 한 곳이 주도권을 가져가지 않는 게 우리에게는 더욱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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