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외교참사인가 아닌가
[홍승희 칼럼] 외교참사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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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외교순방을 하는 중간에 섣불리 외교성과를 평가하는 일은 웬만하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워낙 여기저기서 구멍을 너무 많이 드러내는 탓에 국민들이 우려를 넘어 부끄러움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러 여당인 국민의 힘은 돌아올 때까지 유보해달라는 주문을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이미 '외교참사'로 낙인을 찍어버렸지만 그렇다고 개별 사안 하나하나에서 아직 참사에는 이르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문제는 개개 사안별로 실점이 누적되다보니 결과적으로 아무리 변호하려 해도 현실은 참사에 준하는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과 스쳐지나가며 48초간 인사를 나눈 후 윤석열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평소 습관처럼 비속어를 써가며 미 정부와 의회를 폄훼한 일은 아무래도 후폭풍이 예상돼 부끄러움을 넘어서는 걱정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 말도 아닌 말을 두고 직접적인 대응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가뜩이나 인플레 감축법등을 둘러싸고 한국 기업들이 타격을 받고 있고 이를 정부 차원에서 뒤늦게나마 풀어가야 하는 마당에 앞으로 비공식적인 태클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결과가 결국 외교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게 됐다. 대통령 순방 일정에 앞서 미리 미국에 가있던 대표적인 재계 인사들은 지금 이 사태에 어떤 심정일지 궁금하다.

이번 해외순방은 갑작스러운 영국여왕 서거에 따른 조문-정부·여당이나 언론에서는 조문외교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 말은 고인이나 군주를 떠나보낸 영국민과 영국 왕실에 대해 무례해 보일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이 순방 일정 앞에 놓이며 첫 스텝이 꼬인 느낌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문에서부터 국내의 질타와 해외의 비웃음을 모았다.

다소 호들갑스럽게 조문외교 운운한 정부와 청와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 대표들 다 하는 '조문'은 취소됐고 행사장 가까이에 있었다는 한국전 참전용사비 헌화 일정도 취소됐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외교는 실종됐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외교 행보마다 허점과 실수가 잇따라 한숨을 쉬는 국민들이 많다. 15분씩 주어지는 유엔총회 기조연설은 11분 만에 끝내며 한국이 중요하게 다뤄야 할 여러 국제현안들은 아예 빠지거나 제대로 언급도 안 되고 동어반복처럼 '자유'만을 되뇌었으나 문제는 그 자유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미 정상회담을 대대적으로 사전 홍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며 48초 인사한 것을 두고 스탠딩환담이라고 표현하는 청와대 홍보도 민망하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동행해야 할 외교장관은 조문 행사에는 빠지며 미리 미국으로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회담의 필요성을 어필할 어떤 어젠다도 제시되지 못했기에 이런 참담한 모양새가 나타났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기시다 일본총리와의 만남은 부끄러움보다는 국민적 자부심을 짓밟는 짜증스러운 행보였다. 청와대는 양측이 서로 걸어가 중간에서 만난 것처럼 포장했지만 실상은 기시다총리의 컨퍼런스 행사장에 윤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30분간 만나 대화한 것일 뿐이다.

이 만남을 두고도 한국은 회담이라 우기고 일본은 간담이라 칭했다. 사전 약속도 되지 않은 만남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 일본은 한국 정부가 계속 회담이라고 우기니 '그래 그럼 회담이라고 하던가'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고도 한다.

일단 약속도 없는 해외 정상을 먼저 찾아간 저자세 외교도 비판을 받지만 일본 쪽으로부터 무엇 하나 받아낼 여건 조성도 안 된 상태에서 무조건 만나서 30분간 대화 나눴다는 사실만 홍보해대니 그것이야말로 망신이고 국민적 굴욕감을 안겨준 참사다. 그 만남 이전까지 일본은 한국 정부 관료들의 회담성사 발표에 불쾌감을 드러냈고 회담 가능성을 부인했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래저래 국민은 참담하다.

마지막 순방국인 캐나다에서는 또 어떤 실수가 나타날지 국민들은 불안하다. 취임 전부터 외교 역량에 불안했던 대통령이지만 벌써부터 외신들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외교력은 실종됐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으니 걸음걸음마다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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