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직업
[홍승희 칼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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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함께 일한 선배기자와 회식자리 환담을 나누던 중 불쑥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직업이 무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 고개를 갸우뚱하니 그 선배기자가 하는 말이 자신이 보기에는 의사와 검사가 가장 불행한 직업이라 생각된다고 했다.

왜 그리 생각하느냐 물으니 의사는 매일을 아픈 사람만 보고 사니 세상이 죄다 병들어 보이지 않겠느냐 했다. 생각해보면 집안에 오랜 병자가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온 집안이 우울해지는 걸로 봐도 그럴싸했다.

검사는 범죄자들만 상대하다보니 세상이 오로지 범죄로 가득해보이고 정상적인 사람들의 행동조차 범죄의 렌즈로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범죄자 특히 폭력범죄자와 형사와 사회부기자는 분위기가 서로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던 몇몇 사례들이 생각나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선배기자가 그런 말을 한 배경에는 소위 말하는 사짜 돌림 직업이 최고의 직업군으로 각광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꼬려는 의도가 깔려있기도 했다고 여겼지만 병자와 범죄자만 보고 사는 직업이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겠다 싶기도 했다. 문제는 그 불행한 기분이 모든 사람을 환자와 범죄자로 예단하는 단계로 발전했을 경우의 위험에 대해 우리 사회는 너무 무방비한 상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요즘 부쩍 자주 든다는 것이다.

그나마 의사라는 직업은 환자들이 건강하도록 이끈다는 목표라도 있어서 희망적일 수 있지만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검사들의 경우 과연 그런 밝은 목표가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는 게 요즘의 걱정이다. 물론 범죄 없는 사회를 향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행위조차 범죄의 색안경으로 바라보는 지경에 이르면 없는 범죄까지 만들어내는 단계로 진화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기게 된다.

모든 검사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느 직업군에서나 쉽게 발견되는 야심가들이 흔히 빠지는 확증편향을 가진 검사들이라면 그야말로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치에 맞춰 범죄를 재구성하는 법해석에 도달할 위험성이 크지 않을까. 소위 말하는 별건수사가 횡행하는 것도 그런 의심을 거두기 어렵게 만든다.

요즘의 대한민국을 후대의 정치사에서 시대구분을 한다면 아마도 검찰권 전횡의 시대로 규정되지는 않을까 하는 상념이 들기도 한다. 대한민국에 충성하기보다 검찰조직에 충성하는 것이 우선시되는 검사출신들이 대거 정치권에 진입하며 정치실종의 혼란을 초래하는 현상을 보며 그런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검찰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저항과 검찰만이 정의라는 독단은 엄연히 다르다. 법적 다툼이야 법치국가에서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법적 압박이 정치적 대화를 압도하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의 본모습이라 할 수 없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 많은 정치군인들이 군인만이 애국자라고 확신하던 모습이 다른 외피를 입고 재연되는 뼈아픈 역사의 반복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지금 세계는 거대한 경제전쟁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들어 각자도생의 각축이 벌어지는 데 한국에서는 쿠데타에 준하는 국내 권력쟁패에만 모든 국력을 쏟아 붓는 모습이 참담하다. 인플레방지법 문제를 카드로 들고 한국을 방문했던 낸시 팰로시 미 하원의장이 국내에서 환대받지 못하고 돌아간 후의 후유증이나 막대한 천연가스를 아시아에 공급할 수 있는 캐나다의 멜라니 졸리 외교부장관이 일본과 한국을 콕 집어 방문했으나 한국에서는 역시 대통령실이 외면했다. 에너지 문제와 관련이 있고 여타 자원개발 등에서 협력관계가 크게 발전하던 중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주도 금융제재에 우리도 어쩔 수없이 끌려들어가며 표면상 냉각되기는 했어도 기본적 교류는 이어지던 러시아와의 관계도 최근 더 악화되고 동아시아 순방길 나선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당초 예상에 있던 한국만 쏙 빼놓고 다녀갔다. 이들 나라들이 에너지 문제만 걸려있는 관계도 아닌데.

정부가 해야 할 책무 가운데 국내 정치권력의 역학관계는 정권의 안정을 위한 작은 부분일 뿐이다. 가장 기본적인 정부의 역할은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통한 국가의 존속과 역사의 계승이다. 그걸 위해 내치와 더불어 외교와 국방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인데 지금 검찰권의 확대에 국력이 쏠리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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