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한국은행의 금리 고민
[홍승희 칼럼] 한국은행의 금리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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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금리인상을 결정해야 할 한국은행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달 미 연준이 예상대로 자이언트스텝을 밟아버린 탓에 미국 금리가 이미 한국보다 1.0%포인트(p) 높아져 있는데다 다음 달 연준이 다시 최소 빅스텝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미국의 스텝을 따라가기에는 국내외적 변수가 너무 커서 섣불리 빅스텝을 밟기 여의치가 않다. 그렇다고 마냥 미국과의 금리격차 확대를 방관할 수도 없다.

국내 금융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상대로 0.25%p(베이비스텝)로 가야한다는 의견과 0.5%p(빅스텝)으로 가야한다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전자는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강원도발 폭탄이 국내에서 채권시장을 넘어서 전체 금융시장까지 충격에 휩쓸리게 만들면서 자금조달 위기를 겪게 된 개별기업 문제나 급락하는 부동산시장에서 PF를 통한 자금조달길이 막힌 재개발 사업이 중단되는 등 그 파장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빅스텝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질 경우 외국 자본의 유출위험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염려를 하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가 불러온 국내 채권시장의 혼란은 이미 기업들의 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한전과 같은 대형 공기업들마저 회사채 발행에 나서야 할 처지가 되면서 채권시장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기능하게 되어 개별 회사들의 회사채 발행은 더더욱 힘들어지게 됐다.

그러나 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해외에서 기 발행된 외화채들의 상환을 위한 재발행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취소 사례는 단지 그 시작을 알리는 것에 불과하다.

레고랜드 사태의 불러온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국의 정부보증이 신용을 잃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강원도 입장에서는 민영화 수순을 밟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큰 그림에 맞추려는 비교적 단순한 발상에서 행위한 것이겠으나 지방정부가 보증한 사업에서 그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한민국 정부 보증 전반에 대한 해외로부터의 불신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곧 해외투자자들에게 코리아 리스크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직후 나타난 사례가 흥국생명이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흔들리는 국내 채권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 투입을 결정한 정부가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에 가급적이면 국내에서의 채권발행을 자제하고 해외에서의 자금조달을 요구했지만 이미 국내 상황을 읽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성장 전망을 어둡게 보기 시작한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물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다는 반증이다.

당초의 최종 금리수준을 4.5%까지 상정했던 미국은 지금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인상을 이어나가며 5.0%로 그 수준을 높일 것이라는 연준의 암시가 나오고 있다. 물가가 예상만큼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미국에 비해 가계부채 문제에 발목이 잡힌 한국은 지난해에는 미국에 앞서 선제적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했지만 올해 들어 계속 미국보다 더딘 금리인상 행보를 보여왔다. 그로인해 한때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보다 더 금리격차가 벌어질 경우 환율은 매우 불안정하게 치솟을 우려가 크다. 게다가 정부가 장담했던 외환보유고는 직접적 환율방어에 나서지 않는다 해도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될 경우 결코 안전한 방어막의 역할을 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해외 투자자들이 대체로 세계적인 대형 금융자본들이어서 설사 금리격차가 더 벌어지더라도 단기간에 한국시장에서 대거 빠져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이미 해외에서 한반도상황 때문이 아니라 한국 금융시장 상황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시작된다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해외자본들이 마냥 한국시장을 지키고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이 국내 시장상황만을 보고 결정하기에는 이미 한국의 자본시장이 매우 글로벌화 돼 있다. 국내시장에서 발생하는 투자 리스크에 해외투자자들은 국내 투자자들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할 위험이 그만큼 큰 것이다. 특히 채권시장은 주식시장보다 국가의 신뢰도가 더 크게 작용한다. 지난해에는 국제 기준금리보다 낮은 발행가로 해외 자금조달이 가능했던 한국의 신용이 급전직하하고 있는 상황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으면 닥칠 위험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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