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블랙홀 된 발행어음···고금리에 중소 벤처 지원은 언감생심
자금 블랙홀 된 발행어음···고금리에 중소 벤처 지원은 언감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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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증권가.(사진=박조아 기자)
여의도 증권가.(사진=박조아 기자)

[서울파이낸스 김호성 기자] 대형증권사들이 한도 내에서 발행 가능한 발행어음의 비중을 크게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공행진하는 시중 금리에 발행어음 금리도 덩달아 치솟으면서 증권사들에게 이 업무를 인가한 근본 취지인 중소기업 및 벤처 지원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17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최근 네 개 증권사에서 발행한 1년 약정 발행어음 금리는 모두 5%를 웃돈다. 미래에셋증권이 지난달 4.10%에서 5.05%로 인상했고 한국투자증권도 4.75%에서 5.10%로 올렸다. KB증권과 NH투자증권 금리도 각각 5.00%와 5.10%다. 

고금리 기조에 5%대를 웃도는 금리를 적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은 중소, 벤처 기업보다는 대기업, 중견기업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졌다.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운 한계기업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 벤처에 자금을 지원하긴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발행어음이 대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 역할로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발행어음 실적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발행어음 업무를 인가받은 네 증권사의 지난 9월말 기준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잔고는 11조9501억원, 소진율은 80.51%에 달한다. 한투증권에 이어 발행어음 소진율이 높은 증권사는 KB증권이다. KB증권의 발행어음 잔고는 6조7844억원, 소진율은 56.13%으로 파악됐다. 이외 미래에셋증권이 5조4000억원(소진율 36.92%), NH투자증권은 4조4232억원(소진율 20.12%)에 달했다.

이들 증권사의 발행어음 소진률은 급속히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한투증권의 발행어음 잔고는 8조3719억원으로 소진율은 58.56%에 불과했다. 1년도 안된 기간동안 소진율이 무려 22%p나 껑충 뛰었다. 지난해 말 KB증권은 41.15%, NH투자증권이 24.91%, 미래에셋증권은 각각 2.05%였다.

발행어음은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지정된 증권사가 자체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의 단기금융상품이다. 국내에서 한국투자증권을 비롯해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등 4개 증권사들만 자기자본의 200% 한도 안에서 발행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이들 증권사들은 최근 들어 특판 상품 출시에도 속도를 높이며 시중 자금을 흡수하고 있다. 특판 상품으로 판매하는 발행 어음 금리는 더 높다. 한국투자증권이 토스뱅크와 제휴해 발행한 1년 만기형 발행어음 특판 상품 금리는 연 5.7%다. KB증권도 마이데이터 가입고객을 대상으로 연 6% 약정식 발행어음 상품을 내놨다.

만기가 정해지지 않은 수시입출식 발행어음 상품은 미래에셋증권이 3.65%, 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이 각각 3.55% 금리를 제공한다. 1년 약정형 상품보다 낮지만 케이뱅크(2.7%), 카카오뱅크(2.6%) 등 인터넷전문은행 파킹통장 금리보다는 높다. 

이처럼 초대형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발행어음 판매에 나서며 자금 블랙홀이 되고 있지만, 중소 벤처 기업들의 자금 창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한층 멀어졌다. 
KB증권이 발행업무 사업에 가세하며 초대형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발행어음을 판매하던 2019년 당시 금리는 1~2%대에 불과했지만 이들 증권사 가운데 중소 벤처에 자금 공급을 해준 곳은 사실상 전무했었다.

모 증권사 관계자는 "대형 증권사들이 발행어음을 통해 자금 흡수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고금리 기조까지 더해지면서 발행어음의 근본 취지인 모험자본 공급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며 "발행어음의 취지를 보완할 방안에 대해 금융당국의 고심이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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