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문명의 시계는 유지 되려나
[홍승희 칼럼] 문명의 시계는 유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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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시계는 때마다 태엽을 감아줘야 제대로 시간을 가리켰다. 제때 태엽을 감아주지 못하면 다시 시침, 분침을 맞춰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배터리로 움직이는 시계였다. 이후 배터리 시계는 시침, 분침을 아예 없앤 디지털시계로 진화했고 이제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벽시계를 제외하면 그 실질적 효용이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여전히 패션 아이템으로 바늘 있는 시계는 선호되고 있다.

그런 배터리시계도 영구적인 것은 아니어서 태엽처럼 자주 손이 가지는 않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 배터리 수명이 다하면 다시 배터리를 교환해줘야 한다. 모든 물리적, 공학적 움직임에는 반드시 동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긴 텀으로 움직이는 문명의 시계 또한 마찬가지다. 끊임없는 기술의 연구 개발과 활용이 기술문명을 이끌어간다. 인간의 인지적 발현인 문화 예술의 영역 또한 마찬가지다.

전 역사를 통해 보면 인류의 문명은 끊임없이 발전해온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꾸준히 이어져왔다기보다는 인류가 처한 위기상황마다 단속적인 발전과 퇴보로 점철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현재의 인류가 출현한 이후로도 빙하기를 겪으면서, 또 대규모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인류는 여러차례 멸종의 위기를 겪었고 그 이전시대가 이룩한 많은 것들을 잃었다.

단순히 문명자산만을 잃었는지 문명의 기억마저 잃었는지도 현재의 우리는 알 수 없다. 물론 현재의 연구 성과들은 공식적으로 과거의 잃어버린 문명의 자산이 있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게 100% 장담할만한 것이라고 확신하기에는 아직 충분한 발굴과 연구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의 인류는 지금의 자산이 충분히 역사적 사실로, 유물 유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그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진행 중인 기후변화로부터 얼마나 많은 인류를 구해낼 수 있는지도 명확히 할 수 없는 데 지금까지 이룩한 인류 문명이 몇%나 전승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단순히 강대국들의 패권경쟁만으로도 현재 전 세계가 뜨거운 철판 위를 걸어야 할지 모를 위험을 앞두고 있다. 현재의 경쟁구도에서 과연 인류 멸절까지 부를 수도 있는 3차 대전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은 감히 누구도 할 수 없고 또 하고 싶지도 않은 주제다.

패권경쟁을 위해 새롭게 진영을 구축 중인 미국은 적의 세력을 명확히 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도 미국이 적을 만들지 않은 시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베트남 전쟁이 끝난 이후 미국은 반전 여론 등으로 가급적 실제적 전투에 참여하는 것을 자제해왔고 지역적 이해가 얽히거나 미국 내에서의 구체적 피해가 없는 이상 격렬한 전투에 자국 군의 투입을 최소화했고 아직은 그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 중인 중국, 과거의 힘을 되찾고 싶은 러시아와 북한까지 한 묶음으로 한 적 진영을 획정했고 다른 모든 국가는 그런 미국이 그린 구도 속에서 뒤를 따르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국가가 그런 미국의 청사진에 말이 되겠다고 뛰어들고 있지는 않다.

이런저런 자국의 이익을 계산하며 좀 더 폭넓게 혹은 일부분만 동조하는 게 일반적이다. 지리적으로나 경제적 실리, 민족적 염원 등으로 속내 복잡한 한국은 지난 5년 동안 안보와 경제를 분리한다는 양립외교로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런 인정으로 동남아국가나 북방 여러 나라들과도 우호협력을 넓혀왔고 유럽국가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얻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쌓아올렸던 외교적 성과들이 최근 차례차례 무너져가고 있다. 우리가 얻었던 외교적 우위를 반대급부도 없이 다 내팽개치고 미국 일방의 줄서기에서 더 나아가 일본 뒷자리를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국내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국제질서 속에서 국익을 후순위로 돌리는 행태가 확산되는 비이성적 시대가 도래한다면 인류는 더없이 참담한 미래를 맞고 문명은 참화를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패권경쟁이 부른 경제위기는 정치인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며 인류를 파멸로 끌고 갈 위험성을 더욱 키울 것이다. 3차 대전이 됐든 기후위기가 됐든 다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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