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금리 딜레마
[홍승희 칼럼] 금리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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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기준리를 다시 0.25%p 인상했다. 이로 인해 미국과의 금리격차는 다시 0.75%p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다음 달 미국의 금리인상폭이다. 몇 번에 걸쳐 0.75%p씩 자이언트스텝으로 금리를 인상해온 미국도 속도조절론이 서서히 나오고 있다. 인상속도를 늦춰가야 한다는 얘기가 연준 내부에서도 커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단번에 베이비스텝으로 바뀔 것이라는 예상은 나오지 않는다. 현재 예상되기로는 연말 0.5%p 수준의 빅스텝을 밟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그렇게 되면 한국과의 금리격차는 다시 지난번보다 더 벌어져 1.25%p에 이를 전망이다. 한·미간 금리역전이 너무 장기화할 경우 전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내년 한국경제의 전망이 매우 불투명해진다.

한국은행으로서도 이번 금리인상폭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미국과의 금리격차나 환율, 물가 등을 생각하면 최소 빅스텝을 선택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가뜩이나 가계부채 문제도 심각한 마당에 레고랜드 사태 이후 국내 자금시장의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어 큰 폭의 금리인상이 초래할 위험부담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발생한 이후여서 쓸모없는 일이지만 정부가 금융에 정치적 리스크를 떠안긴 대표적 사례가 된 레고랜드 사태는 그 후폭풍이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내년의 경제에도 그 부담을 떠넘기게 됐다는 점에서 한탄이 절로 나온다. 앞으로가 더 걱정인 까닭은 정치적 계산이 경제나 금융, 민생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한 다각적 검토 없이 곧바로 실행으로 이어지는 일이 레고랜드 사태에서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레고랜드 사태를 촉발시킨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경우 국내 자산시장이나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이 몰아치고 있는 와중에도 자신의 결정에 심각한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은 발언을 했다. 여러 분야에서 속속 나타나듯 현재의 정부·여당에서는 최종 책임자들의 책임의식이 결여된 발언이나 행태가 넘치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가 전임지사 행적 지우기라느니 민영화 목표에 맹목적으로 추종한 결과라느니 하는 여러 해석들이 나왔지만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한 후유증이 막대한 재정 지출과 그보다 더한 자금시장 경색으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의 신뢰성이 추락했다는 점이다. 정부 보증의 신뢰성이 떨어짐으로써 웬만한 글로벌 기업조차 해외에서의 자금조달 비용이 대폭 높아졌다.

이번에 한은이 0.25%p의 금리를 올렸다지만 실상 물가안정 측면에서는 그 의미가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무의미한 수준이 됐다. 정부는 50조+α의 자금을 조달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지만 금융기관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200조원 가까운 금융확대가 실현됐기 때문이다.

물론 금리인상에 대해서는 한국만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 중심 정책을 지향하는 미국도 예상되는 내년의 경기침체를 앞두고 금리인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국 경제상황을 중심에 두고 국제적 상황을 조율해나갈 힘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는 미국의 동향을 염두에 두고 자국 상황을 조율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판단해야 할 변수가 훨씬 다양하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정책담당자들은 미국의 상황을 중심에 둔 경제이론에 지나치게 매몰돼 우리의 콘텍스트를 지나치게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내놓는 이론은 교과서가 아니라 참고서로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맹신하고 추종함으로써 실효성의 상당 부분을 잃는 정책들로 혼선을 빚는 사례들이 적잖다.

한국 경제가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가던 시기에는 그런 모방적 정책이 일정 정도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한국 경제는 그 단계를 넘어섰다. 그런 한국의 성장 단계를 신뢰하지 못하고 여전히 모방, 추종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한국의 이익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요즘 새삼스럽게 '국익'이라는 단어가 정치적 수사로 자주 등장하고 있지만 진정한 국익에 대한 성찰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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