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빌라왕' 전세 사기, 정부가 적극 수습 나서야
[기자수첩] '빌라왕' 전세 사기, 정부가 적극 수습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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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한 해를 맞이하며 희망으로 가득 차야 할 시기지만 연일 들려오는 소식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암울하다. '빌라왕' 전세 사기 사건의 내막이 속속 드러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자기 자본 없이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을 밑천으로 주택을 매입하는 '무자본 갭투자'로 수도권 빌라 1139채를 보유했던 빌라왕을 넘어 2700채를 건설하고 차명 보유한 '건축왕'까지 적발됐다. 

대부분 건축주·중개인과 컨설팅 업체로 불리는 브로커 등이 공모를 통해 빌라왕과 같은 바지 사장을 내세워 세입자의 보증금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사기 범죄가 이뤄졌다. 최근 알려진 100억원 이상 피해를 일으킨 빌라왕만 5명, 전세 사기 피해 규모는 1만여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를 입은 임차인의 수는 예상하기도 어렵다. 

그저 내 집 마련을 위해 한 푼씩 모아 전셋집을 구한 서민들은 한순간에 감당할 수 없는 빚만 떠안고 길바닥으로 내몰리게 됐다. 사태가 날로 커지고 심각해지자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부랴부랴 나섰다. 관련 피해 대책 방안을 마련하고 제도 손질과 입법 추진 등을 논의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정부 대응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사실 전세 사기는 전세제도가 도입된 이후 끊임없이 반복된 문제였으며, 이번 피해 사례들도 무자본 갭투자가 성행하면서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과 집값 내림세가 이어지면서 임대차시장 불안이 계속돼 왔다. 매매가격이 전셋값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깡통주택'이 증가하고 계약 당시보다 전세 시세가 더 떨어진 '역전세'도 많아졌다. 이에 따라 임대차계약이 종료됐음에도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도 크게 늘었다. 

실제 지난해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는 깡통전세, 전세 사기 문제들이 주요하게 다뤄지기도 했다. 이처럼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관련 논의가 사실상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가 수많은 피해자가 나온 뒤에야 실태 조사와 예방 대책, 피해 구제 방안 등이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말 그대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이미 흘려버린 피해자들의 눈물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잃어버린 소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또 같은 피해가 반복돼선 안 되기 때문에 이제라도 외양간을 빈틈없이 고쳐야 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1일 새해 첫 방송 출연에서 "국민께 죄송하다"며 전세 사기 피해 예방을 약속했다. 그는 "진작 마련됐어야 했는데 손을 놓고 있다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다음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피해가 수천명, 수만명 생겨나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원 장관의 새해 첫 약속이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정부는 후속조치에 힘써야 할 것이다. 미비한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선량한 세입자를 울리는 전세 사기를 막기 위해 실효성 있는 대책이 조속히 마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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