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외환전망①] 움츠렀던 엔화, 기지개 켤까
[2023년 외환전망①] 움츠렀던 엔화, 기지개 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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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에서 '엔고'로···30년 잃은 일본의 속사정
BOJ 금융완화 고수에 시장 '충격'···"그래도 엔고"
달러당 125엔 기대감···韓수출 경쟁력 제고 vs 효과 미미
일본 엔화 (사진=픽사베이)
일본 엔화 (사진=픽사베이)

지난 한해 외환시장은 지각변동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세계 각국은 고물가를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했고, 그 결과 세계 각국은 통화를 둘러싼 '역(逆)환율전쟁'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승자인 달러의 가치는 폭등했으며, 세계 각국의 통화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양상은 올해 들어 전환점을 맞는다. 숨가쁘게 달려온 긴축 속도가 느려졌고, 세계의 이목은 물가가 아닌 경기에 쏠렸다. 특히 역환율전쟁의 불확실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변수가 많은 상황이다. 이에 각국 외환시장을 전망해보며 올 한해를 가늠해본다. / 편집자 주

[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엔화 가치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던 엔화는, 이달 들어 127엔까지 절상됐다. 그러나 일본은행(BOJ)의 금융완화 지속 결정에 다시 한번 하락세를 타는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현재 시장은 엔화 가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정부는 엔저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미국 달러와 함께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혔던 엔화가 이토록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또 시장과 정부의 줄다리기 속 올해 엔화의 향방 등에 대해 진단해본다.

◆'엔저'에서 '엔고'로···30년 잃은 일본의 속사정

잃어버린 10년. 1980년대 거품경제의 종말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일본의 경제 불황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불황여파가 점차 장기화되며 잃어버린 10년은 어느새 30년이 됐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달러당 260엔에 달했던 엔화가치는 1년 만에 150엔으로, 10년 뒤인 1995년에는 83엔선까지 절상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대규모 통화완화를 통해 투자를 부추겼다. 그 결과 일본 수출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잃었고, 자국 생산성마저 추락했다.

급기야 1995년 G7 국가 간 의도적으로 엔저를 유도하는 '역(逆)플라자합의'가 이뤄진다. 그 결과 엔화는 1998년 145엔까지 절하되지만, 일본 경제 성장률은 0~2%대에 머물며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 든다.

이 같은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고자 나온 것이 2012년 '아베노믹스'다. "윤전기를 돌려서 돈을 찍어 내겠다"는 당시 아베 신조 총리의 발언처럼, 일본은 대규모 금융완화에 돌입했다. 막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인위적 엔저를 유도,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디플레이션을 해소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해당 정책기조는 2023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버블사태에 데인 일본 국민들은 막대한 유동성을 소비가 아닌 저축에 쏟았고, 고령화 국면과 맞물려 일본을 역성장 국면에 밀어 넣었다. 돈이 돌지 않으니 물가는 하락했고, 투자가 없으니 기업 생산성은 낮아졌다.

엔저 유도 효과 역시 희석됐다. 역플라자합의 이후 엔화는 달러당 145엔선까지 절하됐으나 미국의 양적완화, 일본 대지진 등으로 2011년 75.8엔까지 절상된다. 2012년 9월 BOJ는 무제한 양적완화라는 초강수를 단행했지만, 그럼에도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 엔화는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각광받았다. 일본 정부의 안간힘에도 엔고 현상이 지속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상황은 뒤집혔다. 2021년 이후 엔화 가치는 하락했으며, 미 연준의 통화 긴축이 가시화된 지난해 엔화 가치는 폭락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미 연준의 초고강도 긴축으로, 엔화는 1990년대 이후 32년 만에 150엔까지 절하됐다.

이 같은 엔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불안 등으로 높아진 수입물가를 자극했고, 작년 12월 도쿄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4% 급등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1982년 4월(4.2%) 이후 40년 8개월 만에 최고치다. '디플레이션의 나라' 일본이 고물가 속 경기불황이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진입했다.

BOJ, 금융완화 고수···시장 전망과 '정반대'

이 때문에 일본정부가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수정할 것이란 전망이 시장 내 꾸준히 제기됐고, 그 조짐도 있었다.

지난달 일본은행(BOJ)은 단기금리를 -0.1% 동결하되, 10년물 국채금리 변동폭을 기존 0.25%에서 0.5%로 확대하는 사실상 금리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이는 2021년 3월 10년물 금리 변동폭을 0.2%에서 0.25%로 확대한지 1년 9개월 만이다. 기존 통화 완화만을 고수하던 BOJ가 정책을 수정할 여지를 내비친 것이다.

특히 지난 13일 일본 채권시장에서 10년물 금리가 3거래일 연속으로 상한선인 0.5%를 넘어 마감했으며, 장중 0.545%까지 상승했다. 또한 통화정책의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는 8~9년물 금리는 0.6%대로 상승, 10년물 금리를 상회하는 왜곡 현상까지 발생했다. 당초 시장에선 장기금리 변동폭을 더 확대하거나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을 폐기할 가능성까지 점쳐지며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

그러나 지난 17~18일 진행된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BOJ는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시장 예상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최근 1년새 엔·달러 환율 추이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최근 1년새 엔·달러 환율 추이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정책 전환을 기대했던 시장은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 유지 충격을 받는다. 17일 0.544%까지 올라갔던 10년물 국채금리는 0.364%까지 추락했고, 달러당 128.3엔까지 절상했던 엔화가치는 131.38엔까지 절하됐다.

다만 19일 오후 3시 기준 10년물 금리는 0.412%까지, 엔·달러 환율은 127.9엔까지 회복됐다. 이는 시장 내에서 BOJ의 금융완화정책이 장기간 지속될 수 없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음을 뜻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BOJ의 YCC 정책 유지로 엔화가 약세 전환했지만,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며 "통화정책 기조는 4월을 고비로 전환 내지 크게 변화되면서 엔화 강세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미 연준의 베이비스텝 전환과 금리인상 종결 기대감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라갈 일만 남은 엔화···물가·정부부담 등 근거

현재 시장이 보고 있는 변곡점은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의 임기 만료(4월 8일)다. 이를 전후로 YCC의 추가 조정 내지, 폐기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해당 전망의 주요 근거는 일본 정부에 가해진 부담이다. 지난해 12월 YCC 정책 수정 이후 10 년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이를 통제하기 위해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투입하고 있다. 실제 BOJ는 지정가 오퍼레이션(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이달에만(16일 기준) 국채 매입에 17조엔(약 164조원)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나, 완화정책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물가압력이 크게 높아진 점도 YCC 정책 폐기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일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3.8% 상승, 31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총무성은 지난해 12월 도쿄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03.9로 전년 동기 대비 4.0% 상승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이는 1982년 4월(4.2%) 이후 40년 8개월 만에 최대 오름폭이다. 일본에선 '도교 CPI'가 '일본 CPI'의 선행지수로 여겨지기 때문에 31년만의 최고치 기록은 또다시 깨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 시부야 거리 (사진=픽사베이)
일본 시부야 거리 (사진=픽사베이)

특히 일본의 통신비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2%대 후반의 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전반적인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에 기반한 시장금리의 상승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엔화 가치 절상흐름과도 일맥상통한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일본의 높은 고령인구 비율상 연금생활자가 많다"며 "연금과 물가의 상승률은 기계적으로 연동되지 않아 고령층 인구의 소비 감소를 야기할 수 있다. BOJ의 초완화적 통화정책에 이런 요인들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일본의 초완화가 장기화되며 대내외적 금융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며 "내부적으론 국가부채 급증, 가계대출 리스크 확산, 국채시장 기능 저하 등이, 외부적으로는 수입물가 상승, 엔화 가치 보전을 위한 외환보유고 감소 등을 유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상반기 달러당 125엔?···엔화 강세는 기정사실

그렇다면 엔화 가치는 어느 수준까지 상승할까? 여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전망한 지지선은 상반기 기준 달러당 125엔이다.

먼저 지난달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의 오드리 차일드-프리먼 BI 수석전략가는 "올해 상반기 엔·달러 환율이 125엔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중기적으로 볼 때, 다음 지지선은 122.14엔 부근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BOJ가 YCC 정책을 폐기한다는 전제 하에 엔·달러 환율이 125엔을 하향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올해 엔·달러 환율이 상반기 124~144엔, 하반기에 113~133엔선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올해 엔·달러 환율이 상반기엔 125엔선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으며, 하반기엔 하락폭을 더 키울 것으로 예상했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최근 달러 약세 흐름을 볼 때, 방향적 측면에서 엔화가치는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연구원은 "현재 시장 전망으로 보면 미 연준은 근시일내 금리인상을 종료할 것이며, 금리 인하 시점은 최소 하반기가 될 것이다"라며 "통화가치 자체는 향후 금리변동을 선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엔화는 하반기보다 상반기에 더 큰 절상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작년 일본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63%이다. 원금과 이자를 내기 위해 GDP 4% 이상이 소요되는 일본은 정책적 저금리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며 "BOJ는 채권 만기를 조정하거나 장기물 변동범위를 확대하는 기존 방향을 유지할 것이다. 하반기 엔화 가치는 상반기 대비 크게 오르지 않거나, 소폭 절하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엔화 절상···국내 수출 경쟁력 제고 vs 효과 미미

주목할 점은 엔화 절상이 국내에 미칠 영향이다. 통상 엔화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국내 경제에 긍정적 지표로 해석된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특성상 엔화 가치가 올라갈수록,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양국은 주력 수출 품목이 자동차, 반도체, 전기·전자제품 등으로 겹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주요국과의 제조업 수출경합도를 산출한 결과, 일본과의 경합도가 69.2로 가장 높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1~3분기 엔화가 기록적 약세를 기록한 결과, 이로 인한 우리나라의 수출감소액이 168억달러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한 엔저는 일본의 수입액을 증가시켜 무역적자를 심화시켰으며, 엔화약세를 부추겨 무역적자 확대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반대로 엔화 강세 시 국내 수출기업의 수출경쟁력이 강화돼 무역수지가 개선됨을 의미한다.

장우애 IBK경제연구소 산업연구팀 연구위원은 "엔화 절상 흐름은 국내 산업에 긍정적이다. 당장 경합도가 높은 자동차·반도체 등에서 글로벌 수출 경쟁력이 개선될 것"이라며 "또한 일본인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서비스·여행 수지도 제고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장 연구위원은 "엔화 가치 상승은 일본 수입 의존도와 엔화 결제 비중이 높은 소재·부품·장비 부문에서는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 대(對)일본 수입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에 타격이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출경쟁력 제고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의견도 제기됐다. 김효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팀장은 "엔화가치가 올라가면 우리나라 수출기업에게 일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다만 향후 엔화 절상 요인은 경기호조 다 인플레이션에 의한 것이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엔저 효과에도 일본 무역수지가 유의미하게 개선되지 않은 데다, 지금은 세계 주요국이 경기침체로 접어든 상황"이라며 "엔고에 따른 국내 무역수지 개선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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