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도 강조한 지배구조 개선···금융사 CEO '셀프연임' 제동 걸리나
尹도 강조한 지배구조 개선···금융사 CEO '셀프연임' 제동 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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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지배구조법 개정 착수···CEO조건 제시·이사회 책임 강화
지배구조 개선안, '관치' 도구될까 우려···'견제장치'도 필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주인 없는 기업에 대한 지배구조 개선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셀프연임·장기집권' 체제도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금융당국은 금융회사 CEO에 대한 자격요건을 신설하는 등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CEO 셀프연임을 막아 제왕적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취지지만 민간 금융회사에 대한 외부 개입 여지가 커졌다는 점에서 외풍·관치논란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과거 금융지주사들은 과도한 외부 개입으로 지배구조가 흔들린 경험이 있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CEO 선임절차를 마련하는 동시에 외부의 과도한 개입을 막을 장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금융회사를 포함해 소유권이 분산된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선진화돼야 한다"며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지배구조를 제도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보다 깊이있게 고민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적 시스템"이라며 "그만큼 공정하고 투명한 은행의 거버넌스(지배구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업무보고 자리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으로부터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 추진계획을 보고 받은 후 내놓은 답변이다.

특히, 이날 업무보고에 KB·신한·하나·농협·DGB·JB·한국투자·메리츠금융지주 등 금융지주 CEO들이 대거 참석한 점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들 회장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일부 금융지주 회장들의 장기집권·셀프연임에 대통령이 직접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셀프연임'의 연결고리 사외이사···현 CEO가 선임

금융지주사 전·현직 회장들 가운데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 10년(4연임·2012년 3월~2022년 3월) △윤종규 KB금융 회장 9년(3연임·2014년 11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6년(연임·2017년 3월~2023년 3월) △김지완 전 BNK금융 회장 5년(연임·2017년 9월~2022년 11월) △김태오 DGB금융 회장 5년(연임·2018년 5월~)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4년(연임·2018년 12월~2023년 3월)  △김기홍 JB금융 회장 4년(연임·2019년 3월~) 등이 1번 이상 연임에 성공한 대표적 장기 집권 CEO들이다.

주요 금융지주사의 경우 임원추천위원회를 가동해 회장 후보를 발굴하고 평가를 거쳐 CEO를 추천한다. 문제는 후보 추천권한을 쥔 사외이사들을 선임하는데, 금융지주 회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금융지주 회장을 한번 하기가 힘들지, 연임은 기본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통용되는 이유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현재 금융회사 CEO 자격요건 신설, CEO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참석·의결권 행사 금지, 금융사고에 대한 임원 책임 강화, 이사회 내부통제 감시·감독의무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법 개정안 작업에 들어갔다.

특히, 이사회의 독립성과 역할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친(親) CEO 성향인 금융회사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에 머물면서 제왕적 지배구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

금융당국은 지배구조 개선 과정에서 해외 사례를 적극 참고할 계획이다. 실제 주요 선진국의 금융회사 CEO 선임 절차를 보면 감독당국이 CEO에 대한 전문성, 도덕성, 평판 등을 직접 심사하거나(EU·영국) 이사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모범규준을 제시한 사례(싱가포르)도 있다. 미국 등 글로벌 금융회사의 경우 CEO 자격기준과 승계절차 등을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반영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주현 위원장은 지난 27일 출입기자 대상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에서 "주인이 없고 굉장히 중요한 그룹에 대해 승계문제나 임원 선임절차가 투명하고 합리적이면서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냐고 하면 아닌 걸로 알고 있다"며 "(내부통제 제도 개선, 임원 선임절차 투명성 제고 관련해) 외국의 제도를 참고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왼쪽부터)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우리금융그룹 사옥 전경 (사진=각 사)
(왼쪽부터)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우리금융그룹 사옥 전경 (사진=각 사)

◇'외풍'에 금융사 지배구조 멍들까···견제장치 필요

이번 제도 개선은 금융회사 지배구조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취지지만, 자칫 과도한 관치 및 외풍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과거 금융지주사들이 외풍으로 극심한 내부갈등을 겪던 사례를 봤을 때, 이같은 문제가 또 불거지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일각에선 금융지주사들이 현재와 같은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갖추게 된 배경으로 현 CEO들의 장기집권을 꼽기도 한다.

실제 KB금융은 과거 황영기, 어윤대, 임영록 등 외부인사가 영입된 후 그룹 CEO간 갈등 등이 수차례 불거지며 지배구조가 흔들린 상처를 갖고 있다. 이후 2014년 윤 회장이 부임하면서 성과 중심의 내부 승계구도 기반을 마련했고, 그 결과 현재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한금융도 2010년 라응찬 당시 지주 회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 간 내분사태로 조직이 크게 흔들렸지만 2017년 조 회장이 오랜 기간 방향키를 잡으면서 지배구조 안정화를 이뤄냈다.

이번 지배구조 개선안이 관치금융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이번 지배구조 제도 개선이 효과를 내려면 이사회의 독립성을 제대로 확보할 장치가 필요하고, CEO 승계 과정을 명문화시켜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면서 "외부적으로는 스튜어드십(기관투자자가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지배구조 개선 방안들이 정권·정치권력을 강화하는 데 활용되면 오히려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 개입으로 오히려 지배구조가 흔들렸던 과거 사례들이 관치를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 아니겠나"라며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 자체는 동의하나 관치를 위한 도구가 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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