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약탈적 자본주의의 재앙
[홍승희 칼럼] 약탈적 자본주의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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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자본이 끌고 가는 신자유주의경제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약탈적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돈이 돈을 끌어들임으로써 계층상승의 사다리를 걷어내는 결과를 초래해 사회적 발전 동력을 소멸시켜간다는 관점이 이런 평가를 낳았다.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약탈적 성격을 지니지만 역사 속에서 저항을 맞닥뜨리며 그 약탈의 강도를 줄여 생존력을 보전했다. 생산활동을 기반으로 한 산업혁명에 금융이 중요한 보조세력으로 활약하면서 자본주의가 성장했지만 그에 따라 심각한 계급간 착취가 발생했지만 공산주의의 등장에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 자본가의 무한성장에 제약을 가하는 수정주의적 길을 모색함으로써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금융자본이 2차 대전 이후 미국에서 성공의 꽃을 피웠고 이는 미국이 세계적 패권국으로서의 자리를 공고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의 패권에 위협이 될 국가들의 기세를 꺾는 미국의 가장 큰 힘은 냉전시대 이후 무기산업과 병력보다 금융의 파워에서 나왔다.

생산공장을 핵심으로 한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성장해왔지만 기본적으로 금융은 산업자본을 숙주로 삼아왔다. 그러나 금융이 미국의 군사력과 결합한 무기화하면서 1980년대 이후 금융자본은 점차 그 덩치를 불려가며 숙주를 잡아먹는 단계로 진화했다.

현재 진행 중인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의 원인에 관해 공급망 교란, 전쟁 등 이런저런 분석들이 나오지만 생산자본이 금융자본에 잡아먹힌 기형에 대해 천착하는 연구는 드물다. 이 기형은 1차적으로는 버블을 발생시키며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국가의 성장지체를 초래하지만 자연재해와 맞물리면 그보다 더한 재앙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

최근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지대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1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는 등 큰 피해를 보았지만 지진은 기본적으로 국지적 피해에 그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지각의 불안정성이 증대되는 주기에 접어든 것으로 볼 여러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어 화산폭발의 염려도 크고 화산의 경우 지진과 달리 규모에 따라서는 그 영향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특정 화산폭발로 당시 인류의 거의 대부분이 멸종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도 주장한다. 화산재는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며 태양빛을 가려 식물생장이 가로막히며 먹이사슬의 최상위 그룹에게까지 멸종의 위기를 몰고 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올해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자연재해는 엘리뇨 등 기후이상으로 인한 세계적 곡창지대에서의 흉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곡물생산이 타격을 받는 것만으로 이미 세계 곡물시장을 한차례 들썩이게 만들었는데 올해는 기상이변으로 여타의 세계적 곡창지대들에서도 곡물생산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고되고 있어 올해 세계 경기에 주요 복병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에너지가 패권의 힘이 됐고 세계 경제의 중요 변수로 작동해왔지만 올해는 곡물 또한 핵심 변수로 대두될 경우 이는 자본주의의 착취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자본주의에 대한 자본 스스로의 성찰을 끌어낼 사회적 여건이 정치적인 저항 없이 마련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근래 한국 정부가 내놓는 경제정책들은 불행하게도 약탈적 자본주의의 그 착취적 성격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득권이 더욱 강력한 권력을 흡입하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계급을 고착화시키려는 지향을 드러내고 있다.

철학적 고민 없는 막무가내 식 민영화 확대의지가 초래한 자금시장 혼란과 그로인해 파생된 건설업체들의 손실 보전을 위한 부동산 정책 등은 결국 10을 가진 부자는 100을 벌 수 있게 하고 하나를 가진 가난한 자는 그 하나마저 잃도록 강제하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자조적 표현을 사회적 가치로 고착화시키는 비극을 배태하고 있다.

계급간 순환운동이 멎은 사회는 결국 고인물이 되어 썩어갈 수밖에 없고 당연히 사회적 성장은 지체된다. 운동성이 떨어질수록 그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거칠어지고 그나마 그 거친 저항조차 없는 사회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이 죽어가는 운동성을 회복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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