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금리 왜곡의 위험성
[홍승희 칼럼] 금리 왜곡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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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준이 시장의 희망에 다시 찬물을 끼얹고 이달 금리인상을 빅스텝으로 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지난달 금리동결을 결정한 한국과의 역전된 금리 폭이 1.7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추세대로라면 다음 달에 한국의 기준금리 결정에 더 큰 고민이 따르겠지만 또다시 동결을 결정할 가능성도, 그렇다고 미국처럼 빅스텝으로 따라갈 가능성도 매우 낮다. 그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의 금리인상에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기준금리를 높여가면서 시중금리를 억제하려는 것은 분명 모순된 정책이지만 외환과 물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당국의 고육지책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런 모순된 정책은 금융시장 안정에 위협적인 후유증을 낳을 위험이 커 보인다.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예대마진으로 큰 수익을 올렸다고 언론을 통해 이미 밑밥을 깔아놓은 상황에서 한은총재가 국민은행을 방문하고 금리인상 억제를 말한 것은 순수하게 금융의 관점에서 내놓은 정책적 행보는 아닐 것이다. 한국은행이 스스로 독립성을 포기하고 변덕스러운 정치적 풍향계로 전락한 모습으로 보여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물가보다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춘 한국은행의 행보가 현재로서는 경기회복에 청신호가 될 것인지도 미지수다. 마중물을 부어주어도 때가 맞지 않으면 물줄기를 뽑아올리지 못한다.

최근의 금리인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산업부문은 건설업 그 중에서도 아파트 건설사들일 것이고 현재 정부와 금융당국의 관심도 이들 기업의 존폐에 집중돼 있다. 강원도의 헛발질로 촉발된 레고랜드 사태 이후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주목받게 되긴 했지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는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더불어 과열됐던 부동산 경기의 급격한 하강이 시작되면서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아파트 건설업체와 PF에 몰두했던 금융사들 양쪽 모두를 살리려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의지가 한국경제라는 숲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근심하게 만든다는 게 문제다. 금융시장의 안정이라는 한국은행의 목적에도 과연 합당한 일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가뜩이나 수출이 감소하며 한국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금융시장의 안정성마저 위협받는다는 것은 국가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는 일이 아닐지 걱정하게 만든다. 미국의 칼춤이 과거에는 한 나라에만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다면 최근 들어서는 글로벌 체인을 끊어내며 편 가르기를 본격화하는 국면에 돌입했다.

글로벌 공급망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한국의 경우 그런 양 진영의 싸움에 휘말려 들어 큰 피해를 봐야 할 위험이 매우 커진 상황이다. 이런 싸움판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외교력이고 그 외교력의 바탕에는 세계를 설득할 독자적 철학과 논리가 있어야 한다.

그동안 금융과 국방력이라는 두 개의 칼을 써온 미국의 칼날이 아직 완전히 무뎌지지는 않았지만 과거처럼 예리하지는 못하다. 조바심이 난 미국의 칼날은 그래서 더 무자비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상대의 칼날 역시 위협적이다.

그런 양 진영 싸움판에서 아직은 많은 나라들이 어느 한쪽으로 올인하지 않고 있다. 개별 사안별로 저마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외교적 노력들을 펼치고 있다.

유럽은 초강대국들만의 양극화된 전장을 다극화로 뚫고 나가려 하고 일본은 입과 발이 따로 놀며 양쪽에서 실리를 챙기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 정부 들어 한국은 그런 외교적 실속을 차리는 데 너무 서투른 모습을 보여 답답하다.

어느 정부에서나 어설픈 정책들이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요즘 들어 외교와 내치 양면 모두에서 서투른 정치적 결과들이 너무 많다. 하나의 정책이 나오기까지 고려해야 할 여러 변수들에 대한 고려와 검토가 미흡한 탓이다. 정치는 퍼포먼스일 수 있지만 정책은 실질적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종종 간과되는 듯하다.

최근의 금융정책 역시 그런 즉흥적이고 서툰 정치인들에 의해 좌지우지된 불행한 결과물들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정치는 파도가 치는 수면에 속한다면 금융은 출렁이지 않는 깊은 수심에서 안정적으로 계획되고 집행돼야 할 영역이다. 그 경계가 허물어지면 흙탕물이 넘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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