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갑질, 식품업계 고질병인가 
[데스크 칼럼] 갑질, 식품업계 고질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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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식품업계에선 갑질이 '고질'처럼 보인다. 2013년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대리점주에 대한 욕설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식품업계 갑질은 잊혀질만하면 다시 불거지곤 한다. 아쉽게도 식품업계에서 갑질 논란은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해태제과 제품을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한 도매상이 지난달 세무당국으로부터 2800만원에 이르는 종합소득세 과세예고통지서를 받았다. 지난해 세무조사 과정에서 2017년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급하는 방식으로 영업매출을 부풀린 '가공매입' 사실이 드러나 세금을 내라는 통보였다. 

예상치 못했던 세금을 6년 만에 내야할 처지가 된 도매상은 한 두 명이 아니다. 도매상들은 당시 해태제과 영업사원들이 일방적으로 가짜 세금계산서를 끊어서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한 도매상은 "가매출로 잡혔으니, 나중에 마이너스 세금계산서를 끊겠다고 연락받았지만 1억2000만원을 발행하고, 마이너스 세금계산서는 1억원밖에 안 보내줬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해태제과는 당시 일부 영업조직원들이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한 방법으로 매출계산서를 과다 발급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본사 개입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영업조직 관리 담당 임원을 인사 조치했다고도 했다.  

해태제과 쪽은 도매상들의 피해금액이 확정될 경우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해태제과의 '동반자'인 도매상들은 이미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도매상들이 갑질이라고 해도 해태제과는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논란을 빚었던 푸르밀의 사업 종료 선언도 대리점에 대한 갑질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푸르밀 본사 앞으로 관광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주로 부산·경남지역에서 푸르밀 제품을 팔아온 대리점주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항의하러 온 거였다.  

대리점주들은 짧게는 두 달부터 길게는 삼십여 년 동안 푸르밀 제품을 팔았는데, 상의 없이 본사가 일방적으로 사업 종료를 선언했다며 울화통을 터트렸다. 대리점 인수 당시 본사 관리직원 승인 아래 2000만원부터 1억원까지 권리금도 냈다면서, 푸르밀의 사업 종료에 따른 금전 손해뿐 아니라 전국 500여 대리점주과 그들의 가족까지 생계가 어렵게 됐다고 했다. 

푸르밀 사태는 대리점주들의 본사 항의 뒤 사업 종료 철회로 일단락된 분위기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처럼 보인다. 당시 푸르밀 본사와 직접 협상에 나섰던 한 대리점주는 '서울파이낸스'와 통화에서 속내를 드러냈다. 부산에서 오랫동안 푸르밀 대리점을 운영해온 그는 이제 본사를 믿지 못하겠다며 앞으로 잘 해결되길 바라지만, 대리점주들의 마음은 푸르밀을 떠났다고 했다.  

사회 환경 변화에 맞춰 식품기업과 대리점이 맞이한 상황도 바뀌었다. 과거엔 대리점 하나만 운영해도 가족과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지금은 대리점을 여럿 운영해도 수익은커녕 빚내지 않으면 다행일 만큼 상황이 나빠졌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식품기업 본사와 '한가족'이라고 여기며 자부심을 가지고 대리점을 꾸려가는 점주들도 많다. 이에 본사는 대리점을 상생 파트너로 진정성을 갖고 대해야 한다. 

한번 갑질로 입길에 오른 기업이 대리점주는 물론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10년 전 갑질 후유증으로 여전히 적자에 허덕이는 남양유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주현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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