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위기 속 낙관, 더 큰 위기 부른다
[홍승희 칼럼] 위기 속 낙관, 더 큰 위기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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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많은 금융회사 가운데서도 16위에 오른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이 초래한 파장이 어디까지 그 여파를 미칠지를 두고 미국 내에서도 아직은 제대로 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금리인상의 후폭풍 영향으로 벌어진 이번 사태에 대해 연준은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반면 전면 대응에는 재무부가 나서는 일견 투트랙 전략을 통해 향후 미국 금융시장에 미칠 여파를 줄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과는 그 규모 자체가 달라 1년이면 수십 개의 소소한 은행들이 파산한다는 미국이라지만 SVB 파산 전후로 실버게이트, 시그니처 은행 등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파산함에 따라 이게 새로운 금융위기의 전조가 아닌지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물론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비록 SVB 파산 선언 당일에는 구제금융은 없다고 선을 긋던 미 재무부가 뱅크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보며 다음날 서둘러 예금자 전액보장을 약속함으로써 시스템 위기 가능성을 조기 차단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미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을 미 정부 스스로도 사실상 인정함으로써 앞으로의 투자자금 동향에 따라 전 세계적인 미국 발 금융위기가 재연될 위험은 잔존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은 금융을 무기화한 미국이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질 위험에 직면한 것일 수도 있다.

물가안정을 전면에 내걸고 지속적인 금리인상을 하고 있는 미국의 행태는 모든 이웃국가들의 경제위기로 확산되어온 과거 전례로 볼 때 단순한 금융정책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2위 국가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종종 금융우위를 활용해온 미국이지만 그럴 때마다 그 피해는 특정국가에게만 미치지 않아왔다.

인류의 전 역사가 그렇듯 금융위기 또한 반복되는 경향을 보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원인과 결과가 모두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 이론은 대체로 이미 벌어진 상황에 대한 사후 분석에 기초해 정립되기에 이미 새로운 상황이 발생할 때는 기존 경제이론은 낡은 패러다임을 제시할 뿐이다.

따라서 지금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들은 낡은 이론에 기초한 안이한 판단으로 정책을 펼칠 경우 수습하기 힘든 고통에 맞닥뜨릴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경제이론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한국의 경제관료들이 이런 상황에서 과연 효율적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과거 한국경제를 건국 후 최대 위기로 몰아넣으며 성장을 지체시켰던 외환위기 당시에도 한국의 경제 관료들은 매우 낙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봤다가 낭패를 겪게 했다. 이미 동아시아에서 위기의 도미노가 시작됐음에도 낙관만 하던 모습은 마치 6.25 당시 서울을 버리고 달아난 정부 수뇌부들이 국민들을 향해서는 서울을 수호하겠다며 안심시켰던 모습을 연상시켰다.

지금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 위기에 긴장해야 하는 상황이다.

무역수지 연속 적자에 이어 최근 경상수지 적자까지 기록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긴장감은 보이지 않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는 특정 기업군의 이해에만 관심을 쏟는 것은 아니가 의심하게 만드는 맥락없는 발언들이 정부 여당에서 튀어나오고 정책 당국자들은 상황을 경시하는 듯 실제보다 매우 낙관적인 전망과 분석을 쏟아낸다.

20세기 후반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금융산업의 비대화는 금융이 제조업에 토대를 둔 기존 경제시스템을 비웃으며 금융의 우위를 합리화하는 수많은 경제이론들을 양산했지만 이는 세계 경제를 건강하지 못한 고혈압상태로 만들었다. 산업과 금융의 균형과 조화가 깨진 불건강한 상황이 반복적인 금융위기를 만들어내는 원인이라는 진단을 회피하는 한 금융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휘둘러온 미국의 패권에도 깊은 상처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미국의 가장 곁에 서고 싶어 하는 한국은 그 위험을 한발 앞서서 감수할 가능성이 높다.

굳이 금융이 아니라도 미국 옆자리를 약속받고 싶어 미국 대신 손에 피묻히기를 자처하는 게 현재 한국정부의 자세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밥숟갈이 가벼워지는 피해를 가장 직격으로 받는 대상은 정부 관료나 정책당국자가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 그 중에서도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소시민들이라는 점에 답답함을 넘어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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