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 수단의 한계
금융정책 수단의 한계
  • 홍승희
  • 승인 2002.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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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투기열풍이 지나가더니 이제는 체감경기가 영 나쁘다고 여기저기서 울상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경제지표는 결코 나쁘지만은 않은데도 이러니 국민들로서는 통계가 뭔가 부정확하다는 인상을 갖는 게 당연하다.

이런 속에서 요즘 금융통화 정책수단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는 모양이다. 한국은행이나 금융권 전반적으로는 금리를 주된 정책수단으로 택하는 것이 맞다는 편인 것같고 일부에서는 시중자금이 넘친다고 보고 통화량을 주된 정책수단으로 사용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같다.

투기열풍이 휩쓸 당시에는 분명 통화량 주장도 나올 수 있었다. 통화환수를 통해 시중 유동성을 잡아두자는 것이겠는데 실상 통화환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투기열풍은 수그러들었다.

이제 체감경기가 뚝 떨어지고 사채시장에서는 살인적 고금리로 자금수혈을 하는 중소기업들이 나타나는 현재는 그럼 또 통화량을 늘려야 할까.

체감경기가 뚝 떨어진 3/4분기 중 국내 총생산도 늘었고 건설부문을 제외하면 설비투자도 늘었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들은 찬바람을 느낀다. 찬바람 드는 틈새가 분명 있다는 얘기다.

거시지표와 체감경기의 틈새는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소득(GNI)의 괴리다. GNP는 전년동기 대비 5.8%가 늘었으나 GNI가 전년동기 대비 3.8% 증가에 그쳤기 때문이다.

외채상환 등 외환수지 호조에 힘입은 GDP 증가율이 그보다 더 높다보니 국민 개개인들에게 GNI 3.8% 증가가 별 효력을 갖기 어렵지만 세계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이는 결코 작은 성과라고는 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의 경제 여건이 거시적으로 보자면 결코 나쁜 상태는 아니다. 산업생산은 신장되고 부동산가격은 안정됐다.

그러나 내수는 둔화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 안정과 더불어 가계대출 증가폭도 줄어들고 있어 그것만으로 내수둔화의 요인이 된다면 별 염려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총저축률이 최근 20년래 최저수준으로 낮아졌다는 점이다. 최종소비지출이 명목기준 9.2% 증가한데 반해 국민총처분가능소득은 6.5% 늘어나는데 그쳤다. 처분가능소득 이상의 지출이 이루어졌다면 내수경기가 진작되기라도 했어야 하지만 내수는 둔화세가 뚜렷하다.

최종소비지출이 실상 최소 지출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처분가능소득 증가는 그대로 물가인상분의 반영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최소지출에도 불구하고 저축률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중에 돈이 너무 풀려 부동산 투기가 생겼다고 믿어온 통화론자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시중 자금이 넘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자금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해 대기업들 중에는 넘치는 자금이 주체가 안된다고 소문나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 그리고 영세상인이나 영세가계들은 자금난을 심각하게 겪으며 살인적 고금리의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을 비롯한 경제강국들의 초저금리 정책이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는 상황, 개방될 만큼 개방된 국내 금융시장 상황에서 금리 위주의 통화정책수단은 분명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세계경제가 좀체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내 금리만 불쑥 올린다는 것도 옳은 처방이 될 수 없다.

결국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는데 금융관리만으로는 너무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자금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심화는 실상 한국사회 전반의 상황이 그대로 반영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가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면서 발생하는 다발성 투기열풍은 결코 통화정책만으로 다스려질 수 없다. 투기열풍이 부는 한편에선 자금에 목마른 중소기업들이 고금리도 마다않고 사채시장을 뛰어다니며 가계파산 위기도 번져가는 우리 사회의 재화 불균형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 답은 달리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경우 사회 전반의 재화 불균형을 어느 수준까지는 맞춰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한 고도성장은 불균형을 통한 경쟁 유발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경제규모는 저성장시대를 맞아야 할 시점에 다가섰다. 한국 사회가 건강한 발전을 지속시켜 나가도록 불균형 완화에 나서야 할 때다. 급격한 네거티브 변화를 피할 길은 앞선 예측을 통한 미시적 조정을 서두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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