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생금융,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기자수첩] 상생금융,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KB국민은행 1460억원, 신한은행 1623억원, 우리은행 2050억원. 최근 주요 시중은행이 내놓은 '상생금융 지원 보따리'로 예상되는 고객의 금융비용 절감 규모다.

이는 각 은행이 추산한 수치로,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가계대출 금리 인하 등으로 고객 이자를 연간 1000억원 이상 줄이는 한편, 취약층·소상공인·기업고객에 대한 다양한 금융지원도 병행하는 방안이 공통적으로 담겼다. 그야말로 이자 부담에 잠 못 드는 이들을 위한 '선물 보따리'인 셈이다.

이들 은행의 상생금융 지원방안은 이달 연이어 발표됐다. 지난 9일 KB국민은행이 '금융·비금융 지원' 방안을 내놓은 데 이어 신한은행은 지난 24일 '상생금융 확대 종합지원' 방안을, 우리은행은 전날 '우리상생금융 3·3 패키지'를 각각 선보였다.

아직 체감키 어렵지만, 차주들은 머지않아 이자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가 지나기 전에 단기자금시장 안정과 맞물린 은행권의 노력으로 금리 하락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것이란 게 금융 당국의 전망이다.

여기에 추가 지원책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지난달 23일 서민 금융상품인 새희망홀씨대출의 금리를 최대 1%p 인하하는 조치를 내놨던 하나은행은 지주 차원에서 상생금융 확대를 위해 이자와 수수료 결정 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조만간 지원 대상과 규모를 확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전망이다.

이처럼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인 은행들이 이자 깎아주기 경쟁을 비롯한 상생금융에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각기 자발적으로 마련한 방안이라지만, 금융당국 등 전방위적 압박의 결과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실제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당국 수장들은 은행권의 성과급 잔치, 이자장사를 겨냥한 쓴소리를 쏟아냈고, 은행에 사회적 책임·상생금융을 연일 강조했다. 은행들이 고금리 수익에 취해 사회적 역할에 소홀했던 만큼, 경제 전반이 어려운 시기를 맞아 고통 분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은행들이 줄줄이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은 시점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은행 방문 날자와 같다는 점만 봐도, 은행들이 상생금융에 자발적으로 나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압박은 현재진행형이다. 과도한 개입에 일각에선 '관치금리'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너무 많은 이들이 이자 부담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일까. 업계 안팎에선 '관치'라는 비판보다 '상생'을 반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나섰겠느냐'는 여론이 우세한 것도 사실이다. 은행들의 공적 기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정부와 당국이 시장 가격을 압박하는 구조가 계속되기 어려운 만큼, 상생금융에 은행들의 진심이 더해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금융당국자들이 상생 방안을 잇달아 발표하는 은행권을 반기면서도, 일회성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상생금융은 고객과의 공동체 의식 함양을 통해 자율적으로 추진돼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등 떠밀려 시작된 상생금융. 더 이상 비난 회피, 압박의 결과물이 아닌 지속 가능한 금융 생태계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


관련기사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